현대 사회를 살면서 이런 저런 보험에 가입하게 되는데 항시 문제가 되는 것이 약관이다.
눈 좋은 건강한 사람도 돋보기를 써야 보일지 말지한 정말 작은 글씨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있는 약관을 모두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 보험약관중에 직업이 바뀌면 보험회사에 고지하라는 내용이 대부분 들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할 것 없이 바삐 살다보면 이도 쉽지 않은 일.
대법원에서 이와관련된 눈길끄는 판결이 나왔다.
김 모(60·여)씨는 2006년 대학생 아들 전 모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종합보험에 가입했다.
전 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방송장비대여업에 뛰어들었는데 2012년 5월 방송장비 등을 실은 봉고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운행하던 중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 씨는 보험사인 현대해상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으나 현대해상은 김 씨가 보험 약관상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며 계약을 해지한 뒤 일부 보험금만 지급했다.
현대해상은 김 씨와 전 씨가 보험계약 약관 25조와 26조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약관 25조는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계약을 맺은 후 직업 또는 직무를 변경할 경우 이를 지체없이 서면으로 회사에 알리고 보험증권에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26조에서는 이 같은 알릴 의무를 위반한 경우 손해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씨는 그러나 "보험계약 체결 당시 약관 25조와 26조에 대해 설명을 들은 사실이 없다"며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보험증권에 조그만 글씨로 계약 후 알릴 의무에 관한 내용이 명기돼 있다는 것 만으로 명시·설명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보험사가 부당삭감한 보험금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그러나 "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을 원인으로 보험계약을 해지한 것이 적법한 이상 보험사 조치의 부당함을 전제로 하는 원고 주장은 이유 없다"며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김 씨가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재판부는 "김 씨나 전 씨가 약관조항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는 점, 방송장비대여업이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예상하기 어려운 직업이 아닌 점, 직업 변경으로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되는 것을 김 씨 등이 알았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면서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시했다.
여유있을 때 자신이 가입한 보험의 종류와 내용,약관조항등을 한번 점검하는 것도 이같은 사례를 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