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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컵에 물이 반쯤 남았을 때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낙관주의자,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관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긍정적 또는 부정적 사고의 문제만은 아니다. 기회를 중시하는 사람과 위험을 중시하는 사람,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사람과 이미 가진 것을 지키려는 사람의 차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이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서로 다른 전략으로 나타난다.
퀴즈 문제를 연속으로 맞히면 상금이 배로 늘어나지만, 중간에 틀리면 한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게임을 생각해 보자. 도전을 멈추면 지금까지의 상금을 확실하게 가져갈 수 있지만, 계속 도전하면 상금을 두 배로 늘릴 기회와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이익을 두 배로 늘릴 기회에 주목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미 손에 넣은 이익을 잃을 위험을 먼저 생각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제시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익에서 얻는 만족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를 '손실회피 성향'이라 한다. 또한 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반면,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확실하게 5만원을 받는 경우와 50% 확률로 10만원을 받거나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경우, 대부분 전자를 선택한다. 반면 확실하게 5만원을 잃는 경우와 50% 확률로 10만원을 잃거나 전혀 잃지 않는 경우에는 후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판단이 단순히 확률 계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증거, 다른 시선소송을 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가령 피고인 주장에 부합하는 중요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이 있다고 해보자. 의뢰인은 이를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하며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녹음 전체를 들어보니 유리한 발언도 있지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제출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거나 기존 방어 논리가 흔들릴 수도 있으니, 변호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의뢰인은 답답하다. 이렇게 좋은 증거를 왜 제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반면 변호사는 고민스럽다. 의뢰인은 그 증거가 가져올 이익에 더 큰 무게를 두지만, 변호사는 혹시 그 증거로 초래될 위험까지 계산한다. 의뢰인은 물이 반이나 찼다고 보지만, 변호사는 물이 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법률가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떤 선택이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까지 예상하고 대비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기업 법무팀의 역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런 특성 때문에 다른 부서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전략팀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법무팀은 그에 따르는 법적 위험과 규제 문제를 지적하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 어느 사업에나 위험은 따르기 마련인데, 안 되는 것도 되게 해야 할 마당에 될 것도 안 된다고 하니 전략팀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반면 법무팀으로서는 법적 위험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려는 시도가 무모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략팀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 역할이고, 법무팀은 그 기회에 수반되는 위험을 발견하고 관리하는 것이 역할이니, 둘의 균형이 중요한 것이지 어느 한쪽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소송에서 당사자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상당한 이익을 얻은 당사자는 현재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 조기에 분쟁을 끝내고 싶어 할 수 있다. 반면 이미 거액의 손실을 부담할 처지에 놓인 당사자는 불리한 결과를 뒤집기 위해 손실이 늘어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다투려 할 수 있다.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위험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격적인 선택이 언제나 용기 있는 선택은 아니며, 방어적인 선택이 반드시 소심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물러나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고, 반대로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신중함 너머의 전략변호사에게 필요한 덕목도 단순히 신중함만은 아닐 것이다. 위험을 발견하고 경고하는 것은 변호사의 중요 역할이지만, 위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극적인 시도를 피하기만 한다면 의뢰인의 이익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반대로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무조건 공격적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변호사의 역할과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기회와 위험을 모두 살피고, 감수할 만한 위험과 피해야 할 위험을 구별하는 일이다.
더욱이 현실은 퀴즈 게임보다 더 복잡하다. 게임에서는 도전을 멈추면 지금까지 얻은 상금이라도 지킬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멈춘다고 해서 현재 이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이 새로운 투자를 포기하고 기존 사업에 안주하다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고, 소송에서 위험을 피하려고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가 오히려 패소할 수도 있다. 도전하는 데에도 위험이 있지만, 도전하지 않는 데에도 위험은 있다.
다시 퀴즈 게임으로 돌아가 보자. 다음 문제에 도전하는 사람과 여기서 멈추는 사람 중 누가 더 현명할까. 정답은 없다. 다음 문제를 맞힐 가능성, 그 상금이 그 사람에게 미치는 가치,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결과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
컵에 물이 반쯤 남았을 때에도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물이 얼마 남았느냐가 아니다. 그 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앞으로 얼마의 물이 더 필요한지, 다시 채울 기회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소송도,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좋은 전략은 무조건 나아가거나 물러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나아가고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아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