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기업 사옥에는 그 회사의 정체성이 숨어 있다. 로비에 놓인 조형물 하나에도 오너의 취향과 사업철학이 담기기 마련이다. 서울 용산구 LS용산타워에는 조금 특별한 거인이 서 있다. 10원짜리 동전을 촘촘히 이어 붙여 만든 무게 약 3톤의 대형 조형물이다. 구리 제련을 주력으로 하는 LS그룹 사옥 로비 중앙에 동전 동상이 자리잡은 셈이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인간의 형상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을 빼곡하게 채운 동전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전은 겉면에만 붙어 있는 게 아니다. 내부까지 촘촘하게 채워진 구조다. 작품 설명서에는 가로 155㎝, 세로 117㎝, 높이 260㎝ 규모로 10원짜리 동전 65만개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작품명은 ‘더 자이언트-포지티브 맨(The Giant-Positive Man)’. 김승우 조각가가 제작했다. 작가는 동전의 독특한 형태와 빛의 반사를 활용해 ‘행운’과 ‘힘’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은 동전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이루는 모습이다. 작품 설명에는 관객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돼 있다.
이 작품을 사옥에 들인 인물은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이다. 구매 배경에는 구리라는 소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원짜리 동전에 쓰이는 구리는 LS그룹의 주력사업과 맞닿아 있다. 구리 제련을 핵심으로 삼은 LS MnM을 계열사로 둔 그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LS MnM은 현재 구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대표가 이끌고 있다.
구 의장의 문화예술 이력도 눈길을 끈다. 평소 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인 그는 지난 2022년부터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조직위원장을 맡아왔다. 2025년 3월에는 예술의전당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유망주를 후원하고 인문 계간지 ‘보보담’의 편집주간으로 16년째 발행에 관여하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이어왔다.
건물의 이력까지 들여다보면 조형물이 놓인 공간의 사연은 더 흥미로워진다. LS용산타워는 1984년 원래 국제그룹 사옥인 국제센터빌딩으로 준공됐다. 국제그룹은 이듬해 해체됐고 건물은 한일그룹으로 넘어갔다. 한일그룹 역시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해체 수순을 밟았다. 건물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부침이 겹치면서 ‘비운의 빌딩’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풍수업계에서는 건물의 뾰족하고 각진 외관이 살기를 뿜어낸다는 해석도 있었다. LS그룹은 2006년 건물을 인수한 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했고, 2007년에는 LS용산타워로 이름을 바꿨다.
풍수 전문가들은 이를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는 일종의 ‘지명비보’로 해석하기도 한다. 건물의 각진 형태를 불의 기운을 뜻하는 화형(火形)으로 보고, 전력·가스·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는 LS 계열사와 궁합이 맞는다는 풀이도 전해진다.
로비의 동전 동상도 풍수의 관점에서는 다른 의미로 읽힌다. 전통 오행론에서 구리는 금속에 해당하는 금(金)의 기운으로 분류할 수 있고, 동전은 재물과 축적의 상징으로 해석되곤 한다. 수십만개의 동전이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는 점에서 재물의 집적과 결집을 연상시킨다.
구리의 존재감은 사옥 로비에만 머물지 않는다. LS그룹은 최근 LS MnM의 제련 밸류체인을 활용해 실물 구리바와 코인 등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확충으로 구리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산업용 원자재를 일반소비자가 직접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확장한 것이다.
사옥에서는 10원짜리 동전이 예술작품이 되고, 시장에서는 구리바가 새로운 상품으로 등장했다. 한때 기업의 흥망과 함께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건물. 그 한가운데에는 65만개의 동전으로 만든 거인이 서 있다. 구리라는 소재를 매개로 오너의 예술적 취향과 그룹의 사업 정체성이 같은 공간에 겹친 모습이다. LS 사옥의 동전 동상은 그렇게 건물의 또 다른 이야기가 됐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