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봄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출장길에 대학 설립에 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를 찾았다. 연구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는 종합대학이 아니라 소수정예 연구중심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굳혔다. 전 세계 석학들을 데려오기 위해 파격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대학 운영의 자율성과 지속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의 뜻에 공감한 미국과 유럽의 한인 과학자들이 포스텍에 둥지를 틀었다. 제철보국에 이어 교육보국의 뜻을 실현한 순간이었다.
1986년 설립된 포스텍은 영국 대학평가기관 THE의 소규모 대학 평가에서 칼텍에 이어 세계 2위(2024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박 명예회장이 약속한 대로 지원의 지속성과 대학 운영의 자율성이 담보되는 구조를 갖춘 덕분이다. 2일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학교법인의 자산 총액은 약 1조6000억원이다. 이 중 87.5%인 약 1조4000억원이 주식 자산이다. 나머지는 대체자산(약 1400억원)과 채권 등(약 600억원)이다.
법인은 2000년 포스코 출연금 등을 재원으로 포스코홀딩스(당시 포스코) 주식을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주식 운용을 시작했다. 이후 포스코홀딩스 주식 가치가 뛰어 법인의 곳간도 두둑해졌다. 법인은 올해 6월 말 기준 포스코홀딩스 지분 2.45%, 포스코퓨처엠 지분 2.40%, 포스코이앤씨 지분 2.07% 등을 보유하고 있다.
법인은 대학의 장기적인 재정 기반을 설계하고, 기금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며, 그 성과를 대학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국내 주요 대학의 재정에서 법인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7%에 불과한 것과 달리 포스텍은 대학 수입의 39%를 법인이 충당하는 구조다. 올해는 법인이 운영비와 특별사업비 명목으로 약 1000억원을 포스텍에 지원했다.
법인의 투자는 대학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최근 발표된 2026 INUE·한경 대학평가에서 포스텍은 KAIST를 제치고 5위를 차지했다.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는 일반 사립대와 달리 포스텍은 법인의 투자금 등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투자한다. 기본적인 조건만 충족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닌다. 학생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해 한 명당 1100만원 상당의 ‘패스파인더 바우처’도 지급한다.
주세돈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 부이사장은 법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에 대해 “법인의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기조를 이어가며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을 설립하고자 한 박 명예회장의 뜻을 계승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이런 철학을 유지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