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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인공지능(AI) 서비스 개발사 앤트로픽이 이달 기업공개(IPO)에 나설 예정이다. 최대 2조달러(약 2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가치를 둘러싸고 투자자 사이에서 논쟁이 치열하다. 기업가치 산정의 적절성부터 공모주 상장 첫날 주식을 매수해야 할지, 대규모 IPO가 세계 증시 전반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등에 대해서다.
한국경제신문은 2일 ‘미스터 IPO’로 불리는 세계적인 석학 제이 R 리터 플로리다대 명예교수에게 앤트로픽을 비롯한 기업의 IPO 투자전략을 들었다.
초대형 IPO 움직임과 관련해 “AI발 증시 호황이 끝물인 것 아니냐”는 월가 우려가 나오는 데 대해 리터 교수는 “과한 우려”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상장 기업들은 주주환원에 매년 1조6000억달러를 투입한다”며 “앤트로픽이 IPO로 조달할 자금(1000억달러 예상)이 많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 주식 발행(IPO)이 많을수록 이후 시장 수익률이 낮아진다는 주장의 타당성은 52%에 그친다”고 했다.
한경은 올해 글로벌 증시 화두인 AI 거품론, 인덱스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의 유용성, 주식과 채권 비중 배분, 원자재 포트폴리오 전략 등에 관해서도 전문가 의견을 들었다. 대가들의 투자 철학을 담은 인터뷰 전문은 한경 프리미엄9의 ‘구루에게 투자의 길을 묻다’ 시리즈를 통해 독자에게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밸류에이션과 미래 성장성 보면 오픈AI·앤트로픽도 불확실성 커
AI가 범용재로 변할 수 있기 때문하반기 들어 미국과 한국에서 인공지능(AI) 관련주가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AI 종말론’ 주장 등에도 주가가 출렁이는 한편 시장 기저에는 AI가 바꿔놓을 산업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하다. 그만큼 투자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구루에게 투자의 길을 묻다’ 시리즈를 통해 투자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기업공개(IPO)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제이 리터 미국 플로리다대 명예교수는 앤트로픽과 오픈AI 등 AI 기업 IPO에 대해 “좋은 기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라며 “이들 기업의 미래 성장성이 현재 공모가를 정당화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가 범용재와 비슷한 사업으로 변해 기업가치에 걸맞은 이익을 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앤트로픽 IPO는 호황 끝물일까요.
“신규 주식 발행(IPO)이 많을수록 이후 시장 수익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해보니 이런 주장의 타당성은 ‘52%’ 정도로 나왔습니다. 저런 식의 예측이 들어맞았다면 (공매도 등) 큰돈을 버는 투자 전략이 수없이 나왔겠죠.”
▷대형 IPO가 자금의 블랙홀이 될 가능성은요.
“최근 몇 년간 미국 상장기업들은 매년 약 6000억달러의 현금배당을 지급했습니다. 자사주는 매년 약 1조달러어치를 매입했습니다. 기업이 시장에 투자하는 현금만 1조6000억달러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앤트로픽이 IPO로 조달할 자금(1000억달러 예상)은 많지 않습니다.”
▷보호예수 물량도 부담입니다.
“사람들은 인수합병(M&A), 자사주 매입을 통해 시장에서 사라지는 주식도 있다는 점을 간과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뤄진 M&A와 대형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은 신규 주식 발행 물량과 보호예수 물량을 상쇄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빅테크도 주식 발행을 늘리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와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 자사주를 많이 사들인 일부 대형 기술 기업이 주식 순발행으로 전환하고 있죠. 그럼에도 미국 전체 주식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대형 IPO와 보호예수 해제가 중대한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IPO 투자에서 참고할 지표가 있을까요.
“규모가 큰 기업은 상장 후에도 시장 수익률과 거의 비슷한 성과를 냈습니다. 상당히 유용한 경험칙은 ‘연 매출 1억달러’입니다. 연 매출이 1억달러보다 적은 기업은 평균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밑돌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수십 년 동안 계속 반복됐습니다.”
▷소기업도 성장할 수 있을 텐데요.
“역사적으로 많은 소규모 기업에 개인투자자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했습니다. 회사가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했다가 결국 실망했습니다. 증시에서 돈을 벌어준 기업은 거의 모두 상장할 당시에도 상당히 크고 성공적인 업체였습니다.”
▷소규모 IPO에 높은 가격이 붙는 이유는 뭘까요.
“소형 기업 IPO 때는 개인투자자에게도 투자 기회가 많이 돌아갑니다. 이들은 기관투자가보다 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은 개인투자자가 ‘제2 엔비디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작고 젊은 기업에 과도한 가격을 지불한 뒤 실망합니다.”
▷업종별로도 성과 차이가 있었습니까.
“기술 기업은 비기술 기업보다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상장 당시 흑자를 내고 있었는지는 장기 수익률을 예측하는 데 좋은 지표가 아니었습니다. 헬스케어와 바이오테크 기업은 역사적으로 다소 실망스러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신약을 개발하는 일은 비용이 매우 많이 들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스페이스X처럼 시장에 풀린 유통물량이 적은 것도 영향을 줄까요.
“일반투자자에게 매각되는 주식비율, 즉 유통주식 비율과 수익률 사이의 상관관계는 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매출과 밸류에이션입니다.”
▷올해는 IPO 호황으로 볼 수 있을까요.
“올해 IPO로 조달된 총금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지만 상장 기업 수 자체는 여전히 비교적 적습니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제외한 IPO는 100개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1980~1990년대에는 연평균 300개가 넘었습니다.”
▷기업 수가 줄어든 이유가 뭘까요.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 등을 통한 비상장 기업의 자금 조달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수백 개의 유니콘이 탄생하지만 비상장 상태로 남아 있고, 기업가치가 1억달러를 훨씬 넘는 기업 수천 곳도 상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IPO 첫날 급등해도 매수하겠습니까.
“앤트로픽은 상장 첫날 크게 오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르고 나면 가격은 실적 대비 너무 높을 것입니다. 훌륭한 기업이지만 문제는 밸류에이션입니다.”
▷성장성이 고평가 논란을 이길 수도 있을 텐데요.
“AI가 산업을 바꾸는 혁신 기술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앤트로픽 같은 기업의 높은 밸류에이션이 미래 실적에 정당화되지 않을 수 있죠. 중국 기업을 포함한 경쟁이 심화하면서 AI가 범용재(commodity)와 비슷한 사업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페이스X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훌륭한 기업이지만 투자 대상으로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기업가치 1조8300억달러를 정당화하려면 연간 순이익 1000억달러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형 IPO주에 대한 기대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기업은 거품 측면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스페이스X는 훌륭한 기업이고 앤트로픽 역시 엄청난 잠재력을 갖춘 회사입니다. 하지만 최첨단 AI 기업이 그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신기술 개발 같은 많은 일이 계획대로 풀려야 합니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투자에 접근할 수 없는 개인투자자가 ‘투자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 안 해도 됩니다. 투자액의 100%를 잃을 가능성도 줄어들기 때문이죠.”
▷리스크가 크다는 거네요.
“우선 벤처캐피털은 파산하는 수많은 스타트업에도 투자합니다. 상장에 성공하는 기업은 살아남은 소수입니다. 만약 스타트업 투자가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았다면 자금이 더 많이 유입돼 몸값이 올라가고 기대수익률은 낮아졌겠죠.”
▷AI가 IPO 투자에 도움이 될까요.
“최첨단 AI 모델도 기업의 과거 회계 정보만으로 미래 이익이 얼마나 커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사람의 미래 예측이 더 유용할 수 있습니다.”
▷지켜야 할 투자 원칙이 있다면요.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세요. 27년 전 엔비디아가 상장했을 때 전 재산을 투자했더라면 좋았겠죠. 하지만 파산한 수많은 기업에 돈을 전부 넣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IPO 투자 비중은 얼마로 가져갈까요.
“조금 지루하지만 저는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저비용 인덱스펀드에 넣어 장기 보유하는 투자자입니다. 그렇다고 소액의 ‘놀이 자금(play money)’을 특정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제이 리터 교수는…
‘미스터 기업공개(IPO)’로 불리는 제이 리터 미국 플로리다대 명예교수는 IPO 분야 석학이다. 1954년생으로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2024년까지 플로리다대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올해 금융학계 최고 권위 학술단체인 미국재무학회(AFA) 펠로로 선정됐다. 1979년부터 구축한 세계 IPO 데이터베이스는 학계와 월가 투자은행(IB), 월스트리트저널(WSJ) 같은 유력 매체에서 참고 자료로 널리 활용한다.
뉴욕=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