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주주환원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올해 들어 주요 기술기업 5곳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넘게 급감했다. AI 투자에 필요한 자금이 급증하면서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최소 1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로이터통신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데이터와 기업 재무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아마존·메타·오라클 등 미국 빅테크 5곳이 올해 1~9월 배당·자사주 매입에 사용한 금액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9.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27.4%)보다 18.1%포인트 하락한 셈이다.
이들 기업이 벌어들이는 현금은 증가했다. 이들 기업의 올해 1~9월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총 542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문제는 AI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빠르게 불어났다는 데 있다. 이 기간 자본지출은 2배 늘어난 5569억달러에 달했다.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현금보다 투자에 사용한 돈이 더 많아진 것. 로이터 분석 기준 2011년 이후 처음 확인된 현상이다.
이들 기업의 잉여현금흐름(FCF)은 지난해 1~9월 1435억달러 흑자에서 올해 140억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 등 자본지출을 제외한 금액이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자사주 매입이다. 5개 기업의 올해 1~9월 자사주 매입액은 136억달러로 1년 전(818억달러)보다 83% 감소했다. 반면 배당금은 같은 기간 339억달러에서 370억달러로 증가했다. 기업들이 주주와의 약속으로 여겨지는 배당은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조정하기 쉬운 자사주 매입을 줄인 셈이다.
기업별로 보면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알파벳·메타는 지난해 1~9월 총 665억달러의 자사주를 사들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매입 실적이 전무하다. 아마존은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자사주 매입도 2022년 이후 중단한 상태다.
MS 역시 자사주 매입 규모를 줄였다. 올해 3분기 매입액은 4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57억달러)보다 감소했다.
빅테크의 자금 조달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이 적자로 돌아선 상황에서 올해 1~9월 집행한 배당·자사주 매입액은 총 506억달러에 달했다. 사실상 보유 현금이나 차입금, 주식 발행 등을 통해 주주환원 재원을 마련한 것이다.
아마존은 올 3분기에만 자본지출로 759억달러를 사용했다. 이 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424억달러)보다 약 80% 많은 규모다. 이 회사는 해당 분기에 장기부채 481억달러를 조달했다. 알파벳도 잉여현금흐름이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주식 매각으로 약 124억달러, 차입으로 290억달러를 확보했다.
자사주 매입 축소가 주가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전체 주식 수가 감소하면서 순이익이 늘지 않더라도 주당순이익(EPS)은 높아진다. 그간 빅테크의 자사주 매입은 주당순이익·주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
네덜란드 금융그룹 ING에 따르면 알파벳은 2020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자사주 매입을 통해 발행주식 수를 9.5% 줄였다. 이 효과만으로도 별도의 이익 증가 없이 주당순이익이 매년 약 2%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이 급감하면 주당순이익 증가를 실제 순이익 확대로 입증해야 한다. 신규 데이터센터의 감가상각비 부담이 커지는 시점과 맞물려 기업 실적에 대한 투자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JP모건은 지난주 고객들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잉여현금흐름보다 주당순이익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분석했다.
주주환원 수익률에서도 빅테크 중심 업종과 다른 업종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MSCI에 따르면 미국 증시 시가총액의 약 43.5%를 차지하는 기술·통신서비스 업종의 지난 7월 주주환원 수익률은 0.28%에 불과했다. 나머지 업종(1.99%)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AI 관련 자본지출이 당분간 줄어들 가능성도 크지 않다. 아마존은 올해 자본지출이 약 2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추가적인 투자 확대를 예고했다.
프랭클린템플턴의 에런 스탠호프 공동 투자운용 책임자는 지난 15년간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잉여자본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들이 주식·채권 발행을 늘리고 투자자들에게 추가 자금을 요구하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