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이 생물자원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늘리고,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한 기업이 그 이익을 자원 제공국과 공유하는 국제적 틀이 구체화됐다. 제약·바이오 기업 등이 신약 개발 등에 활용하는 유전자 데이터도 이익 공유 대상에 포함되면서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달 19일부터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열린 제17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7)가 31일 최종 결정문을 채택하고 폐막했다고 1일 밝혔다. 당초 폐막 예정일인 30일을 하루 넘겨 협상을 이어간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이번 총회에는 196개 당사국과 국제기구, 전문가 등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생물다양성협약은 동식물과 미생물 등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종과 생태계를 보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기 위한 국제협약이다. 2022년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체계’는 2030년까지 전 세계가 달성해야 할 생물다양성 보전 목표를 담고 있다. 이번 총회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2030년까지 생물다양성 보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원 확보다.
각국은 해당 목표의 첫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올해 3월까지 국가보고서를 제출한 129개국의 자체 평가 결과, 국가별 목표 가운데 이행이 순조로운 목표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원과 기술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각국은 이행을 가속하기 위한 방안을 담은 ‘예레반 경로’에 합의했다. 국내외 공공·민간 재원을 확대하고 개발도상국의 기술·재정 지원을 늘리는 한편 지방정부와 여성, 청년 등의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기업의 유전자 정보 활용에 따른 이익 공유 체계도 논의됐다. 핵심은 유전자원 디지털 서열 정보(DSI)다. 유전자원은 식물·동물·미생물 등이 보유한 유전적 정보를 가진 자원을 말하고, DSI는 이들 생물의 유전자 배열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만든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특정 생물자원을 직접 확보해야 연구에 활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데이터베이스에 공개된 유전자 정보를 내려받아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유전자 정보가 디지털 데이터로 유통되면서 원산지 국가가 활용 내역을 파악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공유받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생물자원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생물자원에서 비롯된 유전자 정보가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만큼 그 수익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이를 위해 2024년 제16차 총회에서 신설된 것이 ‘칼리 기금(Cali Fund)’이다.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수익을 낸 기업 등이 기금에 기여하면 이를 생물다양성 보전과 개발도상국 지원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기금의 임시 배분과 기업의 기여를 확인하는 인증서의 과도기적 발급 등 실질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했다. 기업의 구체적인 기여 기준과 인증서의 법적 효력 등은 후속 논의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각국은 생물다양성 보전 재원 마련과 관련해 기여국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다만 기여국 확대 기준과 절차, 기여의 자발성 등을 놓고 국가 간 이견이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각국의 자발적 의사에 기반해 재원 동원 노력을 가속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총회에서 생물다양성 관련 과학기술 협력 성과를 인정받았다. 2014년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총회에서 출범한 ‘바이오 브릿지 구상(BBI)’에 대해 생물다양성협약 사무국이 감사의 뜻을 결정문에 담았다. BBI는 생물다양성 관련 과학기술 협력을 촉진하고 국가 간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제협력 구상이다.
김지영 기후에너지환경부 국제협력국장은 “기술협력과 역량 강화 등을 통해 국제사회의 생물다양성 보전 노력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제18차 당사국총회는 2028년 에콰도르에서 열린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