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가 이런 걸 한다고?…강남서 열린 특별한 수업 [트렌드+]

입력 2026-10-30 21:11
수정 2026-10-30 21:39
프랑스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최근 서울 청담동에서 캘리그라피 클래스를 열었다. 그룹 내 뷰티 브랜드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LF 수입·판매)를 통해서다. 18명 소수로 진행한 이 클래스는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 글씨를 쓰기 위해 참가를 희망한 것이다.

손끝의 감각과 수작업의 가치에 주목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반작용이다. 온라인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아날로그적 감성과 체험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손글씨 배우려 신청 쇄도30일 LF에 따르면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는 최근 서울 청담동 부티크에서 프랑스 전통 캘리그라피 클래스를 진행했다. LVMH가 여러 국가에서 개최하는 '레 주르네 파티큘리에르(Les Journees Particulieres) 2026' 행사의 일환이다. 이번 클래스는 LVMH 측이 서울 개최를 요청하면서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18세기부터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된 '랑글레즈(L'Anglaise)' 서체를 직접 익혔다. 글자를 빠르게 완성하는 대신 획의 방향과 균형을 천천히 관찰하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디지털 환경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집중과 몰입을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캘리그라피는 불리가 오랫동안 고수해 온 대표적인 고객 맞춤 서비스이기도 하다. 불리는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원하는 문구를 손글씨로 작성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품을 담는 포장에도 정성을 들인다. 손으로 쓴 글씨와 세심한 포장을 통해 브랜드가 추구하는 '느림의 미학'을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불리는 캘리그라피를 '종이 위에 새겨진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화장품이나 향수를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을 고르고 포장하는 과정까지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려는 전략이다.
AI 시대 뜨는 '안목자본'이처럼 패션·뷰티업계가 고객에게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제공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은 '안목자본'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안목자본은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집필한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좋은 것을 판별하고 남들이 놓친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이 개인의 경쟁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AI가 다양한 이미지와 디자인을 손쉽게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가치를 인정할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안목은 단순히 유행을 잘 파악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 여러 제품의 품질과 미감, 완성도를 비교하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에 가깝다. 소재의 질감이나 향의 미묘한 차이, 손길이 더해진 세부적인 표현 등은 직접 경험해야 제대로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션·뷰티 브랜드들이 제품 판매를 넘어 공예와 미식, 스포츠 등 다양한 경험을 제안하는 것도 고객이 새로운 감각을 접하고 자신만의 취향을 탐색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탈리아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포르테포르테도 고객의 취향을 세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포르테포르테는 가을·겨울(FW) 시즌을 맞아 VIP 고객을 위한 스타일링 클래스를 마련했다. 단순히 신상품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과 스타일을 직접 탐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구매 고객에게는 포르테포르테 미니 에코백에 이니셜을 새겨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같은 제품이라도 고객마다 다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차별화된 구매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패션 브랜드가 제안하는 고객 경험은 옷장 밖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의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미식이나 스포츠까지 브랜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의 설명과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해 고객이 관심 분야를 깊이 경험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와의 접점을 늘리는 방식이다.

LF의 뉴욕 컨템포러리 브랜드 질스튜어트뉴욕은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커뮤니티 라운지에서 VIP 고객을 위한 프라이빗 와인 클래스를 진행했다. '2025 미쉐린 소믈리에 어워드' 수상자이자 '2024 한국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김민준 소믈리에가 진행을 맡았다.


참가자들은 레드와 화이트, 스파클링 등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며 종류별 특징을 살펴봤다. 특히 두 종류의 화이트 와인을 직접 비교하면서 향과 산도, 바디감, 질감의 차이를 구별하는 시간을 가졌다. 레드 와인에 어울리는 샤퀴테리 페어링과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와인 선택법도 배웠다. 단순히 와인을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맛과 향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고 음식과의 조화를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품 넘어 경험…충성 고객 확보 경쟁골프웨어 브랜드 헤지스골프는 스포츠와 패션을 결합했다. 서울 청담동 제이비골프클럽에서 고객 체험 행사 '스윙&스타일'을 개최하면서 브랜드 공식 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첫 행사임에도 약 2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골프 레슨과 스타일링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이날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통산 5승을 기록한 홍순상 프로가 참가자들의 스윙을 분석하고 원포인트 레슨을 진행했다. 이어 헤지스골프의 강영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2026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주요 스타일링 포인트를 설명하고 참가자별 스타일링과 자유 피팅을 진행했다. 퍼팅과 장타 게임, 미식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마련해 골프를 즐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브랜드가 다양한 분야의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은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온라인에서 제품의 디자인과 가격, 기능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게 되면서 상품 자체만으로는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과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 생활양식까지 직접 경험하도록 해 고객이 스스로 브랜드의 가치를 알아보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안목을 높이는 경험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손끝으로 체감한 수작업의 정성이나 개인의 취향과 연결된 경험은 단순한 구매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디지털로 대체하기 어려운 오프라인 경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