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기업 BMW는 미국 법인에 달러가 부족해질 때마다 독일 본사에서 자금을 보낸다. 기존 방식에선 환전을 지시한 뒤 은행의 송금·결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은행 영업시간이나 국가 간 결제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자금 이동이 지연될 수도 있다.
BMW는 지난해 12월 이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JP모건의 블록체인 결제망 ‘키넥시스(Kinexys)’를 활용해 미국 뉴욕 계좌의 달러 잔액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계좌에서 유로화를 자동으로 환전해 보내도록 한 것이다. 잔액 확인부터 환전, 자금 이체까지 사람의 개입 없이 실시간에 가깝게 24시간 처리됐다.
신간 <금융의 다음 장>은 블록체인이 금융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블록체인 업계 당사자가 아니라 회계법인 안진에서 ‘감시자’의 역할을 20년 넘게 맡았던 파트너 회계사다.
‘코인 버블’이 꺼졌던 4년 전과는 기존 금융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책의 진단이다. 블록체인에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 중 하나가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이다. JP모건은 키넥시스를 통해 결제와 외환거래, 자산 토큰화를 추진하고 있다. JP모건의 예금을 디지털 토큰화한 ‘JPM 코인’은 블록체인에서 24시간 이동할 수 있다.
효과는 기업의 자금 운용에서 나타난다. 기존에는 해외 송금이나 결제가 지연될 가능성에 대비해 여러 계좌에 여유 자금을 묶어둬야 했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필요한 시점에 돈을 옮겨 유휴자금을 줄이고 운전자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JP모건은 국채 등 담보자산을 토큰화해 단기자금을 빌리는 환매조건부채권(레포) 거래에도 활용한다. 담보와 현금을 동시에 이전해 결제 실패 위험을 낮추고, 필요한 몇 시간 동안만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 들어 금융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 사모신용 시장에서도 블록체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짚는다. 책은 사모신용 시장의 한계로 낮은 유동성과 불투명한 가격, 부족한 정보를 꼽는다.
책은 토큰화를 통해 대출채권이나 펀드 지분을 토큰화하면 투자자는 보유 자산의 일부를 양도할 수 있고, 거래시장이 형성되면 가격 발견도 쉬워진다고 설명한다. 상환 내역과 연체율, 담보 상태를 검증해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투자자가 위험을 더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
블록체인으로 바꾸려는 것은 금융의 겉모습이 아니라 ‘백엔드’라는 게 책의 논지다. 돈과 자산이 24시간 움직이고, 거래 기록이 실시간으로 검증되며, 금융계약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세계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