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과 주주환원책을 내놓은 SK하이닉스를 두고 국내 증권사가 제시한 목표주가가 제각각이어서 투자자들 혼란이 커지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를 근거로 최고 400만원까지 제시한 곳이 있는 반면, 일부 증권사는 인공지능(AI) 투자 둔화 가능성 등을 들어 165만원을 제시했다. 개인투자자 사이에선 전망의 근거와 분석 신뢰성을 둘러싼 원성이 커지고 있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목표주가를 165만~400만원 수준으로 제시했다. 대부분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한 가운데 일부 증권사는 목표주가를 높였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매출은 104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7.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83조3000억원으로 632.1% 급증했으며 영업이익률은 79.7%에 달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에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가 더해지면서 시장 기대치를 넘어섰다.
증권가에서는 4분기 실적이 한층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SK증권은 "메모리 공급 부족 심화, HBM4(6세대 HBM) 반영 시작에 따른 메모리 가격 상승이 환율 하락을 상쇄하면서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냈다"며 "올해 4분기 영업이익은 105조원으로 분기 100조원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의견은 '매수'를 제시하고 목표주가는 400만원을 유지한다"며 "2030년까지 메모리 수요 우위 국면의 전망을 밝혔고 AI 인프라 투자의 강력한 명분과 메모리 수요의 구조 등을 볼 때 실적 가시성과 안전성 제고가 동반되는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SK증권 외에도 교보증권이 목표주가 400만원을 제시했다.
목표가를 '짜게' 주는 것으로 익히 알려진 BNK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기존 148만원에서 165만원으로 올렸다. SK증권과 교보증권이 제시한 40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235만원이나 차이 난다. BNK투자증권은 "예상보다 높은 하반기 실적과 내년 초 HBM 가격 인상을 반영해 목표주가를 165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며 "실적 대비 단기 과매도된 점과 앤트로픽 IPO를 통해 최근 치솟던 AI업계 신용위험이 다시 낮아지며 AI 투자심리가 개선되고 있어 주가 반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모리 수요 모멘텀이 지난 2분기 정점을 지나 둔화하는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라며 "AI기업 신용위험과 고금리 상태 유지 등을 고려할 때 저 주가수익비율(PER) 방향성은 지속되는 만큼 투자의견 보유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종에 줄곧 핑크빛 전망을 제시한 KB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420만원에서 35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KB증권은 SK하이닉스의 4분기 추정 영업이익을 89조원으로 제시하고 투자의견은 매수로 유지했다. 100조원의 사상 최대 주주환원과 미래 업황을 긍정적으로 내다보면서도 목표주가는 기존보다 70만원 낮췄다.
IBK투자증권도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400만원에서 320만원으로 하향했다. IBK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하고 실적 대비 주가도 저평가 국면에 있다고 본다"며 "다만 목표주가는 하향하는데 이유는 메모리 시장의 업황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현재 주가와의 괴리율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증권은 목표주가 360만원을 유지하면서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464조원으로 높였다. 다올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도 4분기 영업이익을 각각 101조원, 102조7000억원으로 추정했다. BNK투자증권 역시 103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첨단 공정의 기술적 난이도와 신규 생산시설 구축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회사 측 전망에 주목했다. 장기공급계약(LTA) 확대가 메모리 업체의 이익 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인데다 대규모 주주환원 정책도 증권가의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유안타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330만원에서 370만원으로 상향했다.
이 같은 제각각 분석에 개인투자자 사이에선 '리포트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한 투자자는 "같은 SK하이닉스를 두고 목표주가가 165만원부터 400만원까지 벌어지는 게 말이 되느냐"며 "실적을 분석하는 건지, 각자 원하는 숫자를 갖다 붙이는 건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증권사마다 분석이 이렇게 다른데 일관된 분석 철학이나 책임감은 있는지 의문"이라며 "리포트를 보고 있으면 혈압만 오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투자자는 "목표주가를 올리고 내리는 이유도 제각각인 데다 전망이 틀려도 책임지는 곳은 없다"며 "개인투자자에게는 냉정한 판단을 요구하면서 정작 증권사는 같은 기업을 놓고 냉철한 분석을 못 한다는 게 개인투자자의 여론"이라고 비판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목표주가 차이는 메모리 업황이 정점을 찍는 시점과 AI 투자가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한 가정이 증권사마다 다르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전망이 갈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실적 추정과 적정 주가 산정의 근거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목표주가를 제시할 때는 낙관·중립·비관 시나리오별 실적과 주가 수준을 함께 제시해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전망이 빗나갔을 때 실적과 시장 상황 중 어떤 전제가 달라졌는지 사후 검증하는 관행이 자리잡아야 리서치 보고서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memo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