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었다 하면 품절 대란…아이돌 뺨치는 '슈퍼 완판남' 이재용 [오너 브랜딩 시대]

입력 2026-10-29 13:00
수정 2026-10-29 14:25
그가 입은 옷과 신발은 언제나 '대박 리스트'에 오른다. 그가 선택한 음료도, 음식도 마찬가지다. 연예인 얘기가 아니다. 독보적인 한국 1등 기업 삼성전자를 이끄는 이재용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뉴스를 몰고 다닌다. 이 회장은 여느 대기업 총수와 달리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회장 취임 4주년을 맞아 이 회장의 브랜드 파워와 그를 설명해주는 키워드를 분석했다. <편집자주>
'이재용 조끼', '이재용 운동화', '이재용 립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입고 쓰는 물건에는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따라붙는다. 비싼 명품만 있는 것도 아니다. 10만원대 운동화와 평범한 립밤도 이 회장의 선택을 받으면 품절 리스트에 오른다.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인 인기를 활용해 이 회장은 갤럭시 스마트폰 등 삼성제품을 홍보하는 '영업사원' 역할도 하고 있다.89만원 재킷부터 10만원대 운동화까지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가진 '치맥 회동' 때 입은 회색 재킷은 다음 날 재고 물량이 완판됐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갤럭시의 프리미엄 라인 '란스미어'가 판매한 인조 스웨이드 블루종으로, 정상가는 89만원이었다.

재킷을 사러 왔다가 다른 옷을 고르는 고객도 늘었다. 당시 삼성물산은 란스미어의 하루 매출이 평소의 10배 이상이었다고 설명했다. 고가인 탓에 온라인 판매 비중이 크지 않은 브랜드지만 공식 온라인몰 SSF샵에서도 하루 종일 인기 브랜드 2위에 올랐다. 이 회장이 란스미어 브랜드에 숨결을 불어넣은 셈이다.


2022년 12월 베트남 출장길에 입은 빈폴골프 패딩 조끼도 그랬다. 43만9000원짜리 제품이 사진 공개 다음 날 오전 SSF샵에서 품절됐고, 추가 생산한 물량도 소진됐다. 앞서 2014년 미국 선밸리 행사에서 입었던 언더아머 피케셔츠는 '이재용 운동복'으로, 2016년 국회 청문회에서 꺼내 바른 소프트립스 립밤은 '이재용 립밤'으로 입소문을 탔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선 정장을 주로 입지만, 편한 자리에선 평범하지만 편안한 브랜드를 찾는다. 10만원대 제품인 스케쳐스의 '고 워크 아치핏' 운동화가 대표적이다. 삼성 총수가 선택한 덕분에 이 운동화에는 '이재용 신발'이란 별칭이 붙었고, 판매량은 수직상승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 총수인 이 회장이 입는 옷이나 먹는 음식 등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라며 "그런 만큼 이 회장의 선택을 받은 상품이나 서비스는 일반인들의 구매로 이어진다"고 짚었다."왜 이렇게 아이폰이 많아요?"…회장님의 갤럭시 영업
이 회장이 가장 적극적으로 세일즈하는 대상은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다. 사람들이 아이폰을 꺼내들면 갤럭시로 갈아타라고 권하고, 해외 정상들과 만날 때는 직접 갤럭시폰으로 셀카를 찍는다. 제품의 장점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한마디 농담과 셀카 한 장으로 갤럭시를 홍보한다.

지난해 치맥 회동 때 누군가 아이폰으로 셀카 촬영을 요청하자 "갤럭시를 가져오셔야죠"라고 받아친 게 대표적이다. 이후 젠슨 황 CEO, 정 회장과 함께 참석한 지포스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서는 관객을 향해 "왜 이렇게 아이폰이 많아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황 교수는 이런 모습에 대해 "친근한 이미지를 통해 대중의 호감도를 이끌어 낸 사례"라고 평가했다.


거물들과 만나는 자리도 이 회장에겐 갤럭시폰 홍보 기회가 된다. 지난 4월 인도 뉴델리에서는 갤럭시Z플립7으로 이재명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셀카를 찍었다. 황 CEO에게는 갤럭시Z폴드7을 선물했다. 황 CEO는 지난달 미국 '올인 서밋 2026'에서 후속 제품인 갤럭시Z폴드8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화를 받아 '갤럭시 홍보맨' 역할을 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7> 공동저자인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이 회장이 대중 앞에 나서는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유명 모델의 이미지를 제품으로 옮겨와 대중에게 전달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삼성전자는 이 회장이 사실상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셈"이라며 "많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만든 사람이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을 더 신뢰한다는 점에서 이 회장이 효과적인 제품 홍보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황 CEO 등 유명 기업인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는 현상도 같은 흐름으로 봤다. 그는 "요즘 소비자들은 경영자의 철학에 매력을 느끼고, 제품과 서비스 수준에 그에 걸맞는다고 판단할 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아재폰' 탈출…"호감을 구매로"덕분에 갤럭시 스마트폰은 순항중이다. 한경닷컴이 지난 8월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국내 스마트폰 출하량은 590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11.3% 늘었다. 시장점유율은 78.7%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선두에 올랐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점유율은 21.8%로 애플(20.9%)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갤럭시 브랜드를 일명 '아재폰'으로 받아들이던 국내 젊은층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7월 공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20대의 갤럭시 사용률은 지난해 40%에서 올해 47%로 높아졌다. 아이폰이 53%로 여전히 앞섰지만 격차를 상당폭 줄였다. 삼성닷컴에서 갤럭시Z폴드8 울트라·폴드8을 사전 구매한 10~30대 여성 고객 수도 전작 폴드7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젊은층 사이에선 갤럭시를 '아재 폰' 취급하곤 했지만 이제는 디자인과 혁신이 돋보이는 젊은 브랜드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자의 친근한 이미지가 브랜드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줄 수 있다"며 "총수 개인에 대한 호감이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만 단서를 달았다. 그는 "호감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려면 제품의 성능과 디자인, 가격 경쟁력, 사용자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