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시 데뷔에 나선 인공지능(AI) 기업의 공모 성적이 엇갈리고 있다. 영상분석 AI 기업 인텔리빅스는 일반청약에 약 4조원의 증거금이 몰렸지만, AI 인프라 소프트웨어 기업 래블업은 한 자릿수 경쟁률에 그쳤다. 상장한 반도체·AI 기업들의 주가도 공모가를 밑돌면서 업종 기대보다 실적과 공모가격을 따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인텔리빅스 청약증거금 4조 뭉칫돈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인텔리빅스는 지난 21~22일 진행한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서 1410.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반투자자 배정 물량 62만5000주에 약 4조원의 청약 증거금이 모였다. 앞서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서도 1234.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공모가를 희망 범위인 7600~9000원의 상단인 9000원으로 확정했다. 오는 30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다.
반면 래블업은 지난 22~23일 진행한 일반청약에서 경쟁률이 3.55 대 1에 그쳤다.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은 284.53 대 1이었고, 공모가는 희망 범위인 1만9000~2만2000원의 하단인 1만9000원으로 결정했다. 수요예측 신청 수량의 49.9%가 희망 범위 하단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상장 예정일은 다음달 3일이다.
같은 AI 분야지만 현재 실적과 기업가치 평가의 근거에는 차이가 있다. 인텔리빅스는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사람과 차량 등을 인식하고 위험 상황을 탐지하는 솔루션을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액 466억원, 영업이익 48억원을 기록했으며 13년 연속 영업흑자를 이어갔다. 기술특례가 아닌 일반상장 방식으로 증시 입성을 추진한다.
래블업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연산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관리하는 플랫폼 '백엔드닷에이아이'를 개발한 기업이다. 공모가 산정에는 2029년 추정 순이익 약 211억원이 활용됐다. 회사가 제시한 매출 전망은 올해 약 99억원에서 2029년 약 578억원으로 늘어나는 수준이다. 향후 사업 확대에 따른 이익 증가가 기업가치 평가에 반영된 만큼 이를 실제 실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전문가들은 AI라는 공통된 업종만으로 공모시장 전체의 투자심리를 판단하기보다 개별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과 수급 여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목진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의 경쟁력과 실적에 따라 공모 성적에 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고, 상장 이후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잠재 매도 물량인 '오버행' 부담도 기업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증시 데뷔 후 성적표 보니…줄줄이 공모가 미달상장 전 흥행이 상장 후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반도체 공정용 환경제어 장비 기업 멜콘은 기관 수요예측에서 1136.8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공모가를 희망 범위 상단인 1만2300원으로 확정했다. 지난 15일 상장 첫날에는 공모가보다 42.03% 높은 1만7470원에 거래를 마쳤지만, 전날 종가는 1만2180원으로 공모가를 0.97% 밑돌았다.
AI 인프라 기업 엘리스도 일반청약에서 약 40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10조원 넘는 증거금을 모았지만, 지난 20일 상장 첫날 공모가 9만500원보다 32.04% 낮은 6만1500원에 마감했다. 이후 반등하며 공모가를 회복하기도 했으나 전날 18.58% 급락한 7만6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공모가보다 15.24% 낮은 수준이다.
엘리스의 부진한 증시 데뷔는 해외에서도 AI 투자심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엘리스가 AI 기업의 가치평가 적정성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섰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엘리스의 데뷔전 폭락은 AI 지출에 대한 투자자의 우려를 증폭시켰다"고 진단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배런스는 엘리스의 매출 증가와 수익성 개선에도 투자자들이 높은 기업가치와 향후 자금조달 부담을 우려했다고 짚었다. AI 사업의 외형 확대만으로 공모가격을 설득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이러한 평가 속에서도 연말까지 AI 관련 기업의 공모 일정은 이어진다. 기업용 생성형 AI 솔루션 기업 제논은 지난 26일부터 오는 30일까지 기관 수요예측을 거쳐 다음달 4~5일 일반청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자체 플랫폼 '제노스(GenOS)'를 기반으로 기업의 AI 도입과 운영을 지원하며, 희망 공모가는 9700~1만2200원이다.
공간정보 AI 기업 다비오는 다음달 2~6일 수요예측과 10~11일 일반청약을 예정하고 있다. 제조 AI 솔루션 기업 인터엑스도 11월 30일~12월 4일 수요예측에 이어 12월 9~10일 일반청약을 진행할 계획이다.
목 연구원은 공모주 시장의 회복 조건으로 이익을 내거나 이익 발생 시점이 가시화된 기업의 공급을 꼽았다. 그는 "이미 이익이 발생하고 있거나 앞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시화된 기업이 많이 상장해야 한다"며 "기술특례로 상장하는 기업 중에는 이익을 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곳이 많아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지 한경닷컴 기자 kong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