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국내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갈아치웠다. 5월 6일 코스피지수가 처음으로 7000선을 넘어선 데 이어 15일 8000선을 돌파했다. 증시가 축포를 터뜨리는 동안 주식 투자로 불어난 자금은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5월 주택 구입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거래의 28.9%에서 주식·채권·암호화폐 매각 대금이 매수 자금으로 활용됐다. 금액은 1조9947억원으로 전체 매수 자금의 8.2%를 차지했다. 월간 기준 올 들어 최대치다. 코스피지수가 역대 최고종가(9114.55)를 기록한 6월에도 주식 등 매각 자금 1조3344억원이 주택 구입에 쓰였다.
◇비싼 집일수록 주식 의존도 높아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주택 구입에 쓰인 주식 등 매각 대금은 증시가 활황을 보인 올해 4~6월 정점을 찍었다. 주가 상승으로 불어난 자금을 주택 매수에 활용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윤지해 부동산 평론가는 “집은 출퇴근 편의성과 자녀 교육 여건 등 삶의 만족도와 직결되는 필수재인 데 비해 주식은 선택재 성격이 강하다”며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주식에 투자한 뒤 자금이 모이면 부동산으로 옮기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 주택일수록 주식 등 매각 대금 의존도가 높았다. 30억원 이상 주택의 매수 자금 가운데 주식 등 매각 대금 비중은 올해 1월 16.0%에서 9월 18.9%로 상승했다. 지난해 연간 비중(7.25%)의 약 2.6배다. 반면 3억원 미만 주택은 같은 기간 2.3%에서 2.1%로 소폭 하락했다.
대출 규제가 주택 가격대별 자금 조달 방식의 차이를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15 대책’에 따라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은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 여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된다. ◇중저가 지역은 주식과 빚까지 ‘영끌’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에서는 주택 구입에 활용된 주식 등 매각 자금 비중이 크게 늘었다. 서초구는 지난해 연간 5.3%에서 올해 1~9월 15.7%로 10.4%포인트 상승했다. 강남구는 5.5%에서 15.0%로, 용산구는 7.0%에서 15.0%로, 송파구는 4.1%에서 10.6%로 높아졌다.
이들 지역에서는 매수 자금 중 대출금과 임대보증금 비중이 줄었다. 대출 규제와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방식) 제한으로 생긴 자금 공백을 주식 등 매각 대금과 증여·상속으로 메운 것으로 풀이된다. 강남 3구와 용산구의 증여·상속 자금 비중도 지난해 4.7%에서 올해 1~9월 6.9%로 상승했다.
이에 비해 노원구와 구로구 등 서울 외곽 중저가 지역에서는 주식 매각 자금뿐 아니라 대출금 비중도 확대됐다. 전·월세 부담이 커지면서 대출을 끼고 내 집 마련에 나선 실수요자가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70%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임대료가 계속 오르면서 실수요자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느니 차라리 집을 사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기준 주택 매수 자금 중 대출금 비중은 올해 26.4%로 지난해(25.7%)와 비슷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8.7% 올라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2.2%)의 네 배에 달했다. 경기(6.2%)와 인천(4.5%)도 입주 물량 감소와 실거주 의무 강화 등의 영향으로 전셋값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을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핵심 입지의 공공분양을 늘려 주거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 의원은 “주식은 생산적 금융, 집은 망국적 투기라는 정부의 이분법은 주식으로 번 돈으로 결국 집을 사는 현실을 외면한 허상”이라며 “대출과 갭투자를 틀어막으니 상속, 증여 등 ‘부모 찬스’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은서/강영연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