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창립 60주년을 맞아 내년 1월 영빈관을 준공한다. 그룹은 이곳을 해외 귀빈 접견과 만찬 공간으로 쓸 예정이다. 글로벌 ‘톱3’ 완성차그룹으로 성장하면서 해외 기업 오너와 각국 정부 인사를 만날 일이 늘자 별도 공간을 마련해 협력 기회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삼성전자는 1987년부터 영빈관 ‘승지원’을 운영 중이고, SK하이닉스도 서울 성북동에 영빈관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오너 일가의 밀실로 불리던 영빈관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왕회장’ 생일 만찬 열던 자리
현대차그룹의 신축 영빈관은 성북동 2개 필지에 대지면적 1736㎡, 연면적 3120㎡, 지하 2층~지상 2층 규모로 들어선다. 기존 건물(959㎡)을 정리하고 26년 만에 새로 짓는 건물이다. 기존보다 세 배 이상 크다. 시공은 계열사인 현대건설이 맡았다.
이곳은 과거 정주영 명예회장이 영빈관으로 쓰던 곳이다. 해외 귀빈뿐 아니라 그룹 경영진도 이곳에서 맞았다. 정 명예회장은 생일이면 사장단 부부를 불러 만찬을 열었다. 귀빈 접대를 넘어 그룹의 결속을 다지는 공간이었다는 얘기다.
2001년 정 명예회장 별세 후 소유권은 당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대주주이던 HD현대중공업으로 넘어갔다. HD현대중공업은 외국 선주 등 귀빈 응대에 활용하다가 2016년 11월 SK가스에 약 131억원에 팔았다. 이후 2021년 현대차·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등 4개사가 200억원에 되사들여 현대차그룹 소유가 됐다. 2024년 6월부터는 4개사가 공동 출자한 HMGS 유한회사가 소유·관리하고 있다.
영빈관을 다시 여는 건 해외 VIP 응대 수요가 크게 늘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인 2022년부터 글로벌 판매 톱3를 지키고 있다. 정 회장은 올해에만 18차례 해외 출장을 다녔다. 반대로 협력을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 파트너도 많아졌다.
영빈관 신축 논의는 2019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6월 삼성이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승지원에서 맞자 현대차그룹 안에서도 ‘제대로 된 영빈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 승지원엔 정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가 모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간 별도 영빈관이 없어 글로벌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 등 핵심 고객을 맞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영빈관 만찬 뒤엔 협력 발표
영빈관은 독립된 공간인 만큼 외부 시선 없이 민감한 현안을 터놓고 논의하기 쉽다. 각별한 의전과 보안 속에 식탁을 마주하다 보면 사업 파트너를 넘어 인간적인 신뢰도 쌓인다는 후문이다. 영빈관이 굵직한 협력의 전초 무대로 불리는 이유다.
이 때문에 다른 그룹은 일찌감치 영빈관을 비즈니스 무대로 썼다. 대표 사례가 삼성 승지원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1987년 이병철 창업회장의 서울 이태원동 거처를 물려받아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고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4년 2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부부, 지난해 11월엔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이곳에서 만찬을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메타와 인공지능(AI)·웨어러블, 벤츠와는 전자장치 부품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LG는 지난 1월 서울 남산동에 지하 3층~지상 4층 규모 남산리더십센터를 열고 고위직 교육과 글로벌 네트워킹 거점으로 쓰고 있다. LG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층에 귀빈을 대접하는 식당 ‘스마일즈’도 운영 중이다. SK에선 SK하이닉스가 3월 성북동 건물을 SK텔레콤으로부터 139억원에 사들였다. 귀빈 만찬장과 숙소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은 올 7월 울산 조선소 내 한옥 영빈관에서 영국 앤 공주를 맞았다.
재계 관계자는 “예전엔 영빈관이 오너가 사람들끼리 모이는 사적인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해외 파트너와 신뢰를 쌓는 영업 현장에 가깝다”고 말했다.
양길성/김우섭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