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가수가 가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호소력 짙은 보컬로 사람들이 공감할 삶의 메시지를 노래한 머무르다.
머무르는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라는 곡으로 국내 음원사이트 멜론의 톱 100 차트 일간 3위까지 차지했다. '국민 걸그룹'으로 인기몰이 중인 리센느의 '러브 어택(LOVE ATTACK)'을 넘어선 성적이다. 기세는 더 거세져 매시간 소연의 '퇴사할게여'와 2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쉽게 귀에 감기는 멜로디에 담백하고 깔끔한 전개, 심금을 울리는 가사로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았다. 팍팍하고 고된 삶의 무게를 '꿈꾸던 어른이 되었냐'는 질문으로 위로했다. 곡의 메시지에 감동했다는 청취자 반응이 많다.
동시에 "충격적이다"라는 반응도 나온다. 머무르의 음악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들어진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머무르의 목소리 또한 AI로 생성돼 충격과 실망을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머무르를 탄생시킨 2인 프로듀싱팀 글로리웨이브(GLORYWAVE)에게 직접 AI 음악을 만든 이유와 작업 방식 등에 관해 물었다.
작곡가 이용석(활동명 Martin East), 최성혁(활동명 비트자루)으로 구성된 글로리웨이브는 10년 넘게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최근 한경닷컴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저희 둘 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각자의 음악 활동을 하다가 2013년경 서울의 한 작곡가 사무실에서 만나 팀을 이루게 됐다"고 밝혔다.
그간 글로리웨이브는 황치열 '왜 이제와서야', XIA(김준수) '길', 길구봉구 '내일 이별' 등의 곡을 작업했다. 특히 황치열의 작업물은 20여곡에 이를 정도로 다수 창작했다. 스윗소로우가 부른 국민연금 로고송도 이들 작품이다.
실재하는 아티스트의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해오던 이들이 왜 돌연 AI 작업을 결심한 걸까.
글로리웨이브는 "작곡가라는 직업은 클라이언트나 가수, A&R(Artists and Repertoire) 담당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방향과 음악적 색깔에 맞춰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저희가 처음부터 끝까지 방향을 정하고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창작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마침 빠르게 발전하는 AI 음악 기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제작 방식에 대한 가능성도 느꼈고, 기존 아티스트들의 작업에 바로 적용하기보다는 별도의 프로젝트에서 자유롭게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머무르다"라고 밝혔다.
머무르의 작업은 기존의 전통적인 창작 활동과 다르게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했다. 작업 과정은 △먼저 인간인 이들이 구체적인 곡 방향성을 잡고, △가사 초안을 만든 뒤, △음악 생성 AI 수노(SUNO)로 멜로디·편곡·보컬을 만들고, △수정 작업을 거듭하는 식이었다.
글로리웨이브는 "곡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획에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라면서 "누구에게 이야기할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장르와 분위기로 만들지 등을 먼저 정하고 두 사람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작업을 시작한다"고 전했다. 작업을 하다가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획 단계에서 최대한 명확하게 잡아둔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직접 쓴 가사 초안을 바탕으로 수노를 활용해 멜로디와 편곡, 보컬의 방향을 만들어간다. 한 번 생성해서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은 아니고, 저희가 생각했던 방향에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가사나 음절을 바꾸기도 하고, 멜로디나 리듬, 악기 구성, 보컬의 느낌까지 여러 요소를 계속 조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역시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글로리웨이브는 "저희가 직접 주제와 음악적인 방향을 기획하고 가사를 썼으며, 수노를 활용해 멜로디와 편곡, 보컬을 생성했다. 이후 큐베이스(음악 제작 프로그램)에서 추가적인 소스를 덧대고 필요한 부분을 편집한 뒤,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직접 진행해 최종 음원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곡의 창작 비중을 '인간 : AI'라는 단순 수치로 나누기는 어렵다고 봤다.
전 과정을 직접 창작하던 것과 비교해 AI를 활용했을 때의 장단점을 물었다. 그러자 "가장 크게 체감한 부분은 음악을 만들 때 시도해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굉장히 많아졌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기존 방식으로 대중음악을 작업할 때는 어느 정도 편곡을 진행하거나 가이드 보컬을 녹음한 뒤에야 곡의 전체적인 그림을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하나의 곡을 가지고도 여러 장르나 편곡, 보컬의 방향을 비교적 빠르게 만들어보고 직접 들어본 뒤 어떤 방향으로 갈지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저희가 간단하게 불러놓은 가이드 보컬도 AI를 활용하면 실제 완성된 음원에 조금 더 가까운 형태로 미리 들어볼 수 있다"면서 "작업 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도 분명하고, 비용적인 면에서도 이전에는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여러 방향을 테스트할 수 있게 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다만 "작업 시간이 짧아졌다고 해서 결과물의 퀄리티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결과를 선택할지, 그리고 거기서 얼마나 더 손을 보고 완성도를 높일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를 비롯한 머무르의 음악은 처음 기획 단계부터 사회초년생이나 직장인 등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글로리웨이브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며 "어릴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과 실제로 어른이 된 지금의 모습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지 않나. 돈이나 집, 직장에 대한 고민도 있고, 여전히 불안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도 한다. 저희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런 경험과 감정에서 출발해서 가사를 쓰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분이 이 곡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어주신 것도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번쯤 스스로 던져봤을 법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트 성적과 관련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순위를 확인하고도 믿기지 않았다"면서 "저희가 만든 노래를 이렇게 많은 분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어주고 있다는 점이 가장 기뻤다"며 감사를 표했다.
특히 이 곡은 최근 배우 공유가 팬미팅에서 부르며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글로리웨이브는 "저희도 공유 님의 영상을 봤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곡에 대한 상세한 소개까지 해줘서 더욱 기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곡의 인기만큼이나, AI 음악에 대한 논쟁도 활발하다. 'AI 음악인 줄 몰랐다'며 배신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글로리웨이브는 "저희 역시 처음 AI 기술을 접했을 때 큰 충격과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머무르는 처음부터 음원 소개에 AI 활용 사실을 명시했고, 제작 방식을 숨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음원 플랫폼이나 음악을 접하는 환경에서 AI 활용 여부를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합리적인 표기 기준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밝혔다.
AI 음악이 빠른 속도로 일상에 침투하면서 업계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현행 저작권법상 저작권료는 인간이 창작에 참여한 부분만 인정된다. AI 활용 음악에서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기준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인간 창작자의 기여도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발생한 수익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조건적인 배척보다는 시대적 흐름에 걸맞은 기준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람의 창작 과정이 전혀 없는 스팸성 음원은 걸러져야 맞지만, AI를 효과적으로 운용해 좋은 창작물을 만들어낸 경우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리웨이브는 AI 활용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이에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글로리웨이브는 "일반적인 방식의 작사, 작곡, 편곡 저작권료를 받고 있지 않다. 단 음원 유통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정상적으로 정산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AI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음악을 동일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실제 제작 과정에서 사람이 어떤 부분에 창작적으로 기여했는지를 구분하고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기존 음악인들이 만들어온 저작물과 창작 활동에 대한 권리 역시 충분히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면서 "저희 역시 오랫동안 기존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온 창작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기존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새로운 제작 방식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끝으로 이들은 '도구는 변해도,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가치관을 강조했다.
"AI를 활용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저희가 음악을 만드는 이유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도 어릴 때 음악으로부터 위로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그것처럼 저희가 만든 음악도 누군가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