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욱·日 여배우, 로맨스 통했다…72개국서 난리 난 드라마 [김예랑의 K컬처인사이드]

입력 2026-10-24 12:00
수정 2026-10-24 12:15

배우 지창욱과 일본 배우 이마다 미오가 주연한 '메리 베리 러브'가 72개 국가·지역에서 디즈니+ 톱10에 진입했다. 한국 제작사와 일본 방송사가 함께 만든 작품의 해외 성과다.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거나 리메이크하던 양국의 거래가 원안과 연출, 제작 인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달 공개된 '메리 베리 러브'는 CJ ENM과 닛폰TV가 공동 제작한 로맨틱 코미디다. 실패를 겪은 한국 공간 디자이너가 일본의 섬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농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CJ ENM에 따르면 디즈니+ TV쇼 월드와이드 차트에서는 2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시작한 기획은 인물 간 대비를 살리는 과정에서 한일 배우를 각각 기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일본을 주요 촬영지로 삼았고 현지 인력이 후반작업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에서 호흡을 맞춘 스태프도 투입됐다.

작품별 협력은 현지 제작 기반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CJ ENM은 지난 4월 일본 TBS·U-NEXT홀딩스와 합작법인 '스튜디오모노와'를 설립했다. 일본 방송사·플랫폼과 공동으로 사업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회사가 이번에 공개한 자료에는 작품별 투자 비율이나 IP 배분 조건은 담기지 않았다.

◆ 일본이 찾는 것은 원작만이 아니다


한국 연출자의 참여가 일본 배우의 출연을 이끈 사례도 있다. 일본 매체 CINRA의 보도에 따르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 제작에 참여한 자유로픽쳐스 측은 사토 타케루의 캐스팅에 대해 "가장 큰 결정 요인은 감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더 글로리', '비밀의 숲'을 연출한 안길호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는 배우의 의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TV아사히와 한국 제작사 SLL의 '마물'에서는 기획 단계의 협력이 이뤄졌다. TV아사히에 따르면 SLL이 원안과 감독,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일본 측이 시나리오를 발전시켰다. 양사는 '이태원 클라쓰'의 일본판 '롯폰기 클라쓰' 제작 이후 글로벌 콘텐츠 기획·개발 협정을 맺었다.

다만 한국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제작사가 투자 지분과 IP를 확보했다고 볼 수는 없다. 공동 기획과 공동 투자, 제작 업무 수탁은 계약 형태가 다르다. 배우와 스태프의 국적만으로 자금의 출처나 수익 배분 구조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일본 현장에서는 공동제작이 창작보다 예산 분담에 치우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PKFP Partners 대표인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유아사 노리코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측의 최우선 순위는 '비용 분담'"이라고 말했다. 일본 방송사도 제한된 예산으로 효과를 높일 파트너를 필요로 한다는 설명이다.

유아사 대표는 일본에서 공동제작으로 불리는 사업 중 상당수가 비용을 나누는 합의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독립영화에서는 창작 의도와 일정, 제작 문화의 차이를 사전에 조율할 수 있었지만 방송사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깊이 있는 논의가 더 어려웠다는 것이다.

해외 파트너를 찾는 한국 제작사를 위한 지원도 기획 단계에 맞춰지고 있다. 콘진원이 올해 5월 발표한 '시리즈 온 보드: 도쿄' 개최 자료에는 국내 제작사 10개사가 일본 방송사·투자사 등에 신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담겼다. 완성작의 구매자를 찾는 데서 나아가 개발 중인 작품의 투자와 제작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 "한국서 성공했나"…새 기획에도 검증


일본과의 협업이 모든 기획에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 방송사와 OTT는 배우 인지도와 한국 내 흥행 기록을 주요 구매 기준으로 삼는다. 공동제작을 제안할 때도 한국에서 유사한 작품이 성공했는지 질문받는 등 검증된 기획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새로운 것을 함께 만들기보다, 검증된 히트작의 복제를 원한다"고 짚었다. 해외 일감을 확보하더라도 실험적인 서사나 신인 중심의 프로젝트가 투자로 이어질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일본 시장용 기획과 글로벌 시장용 기획을 구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지 사업자가 익숙한 편성 문법과 정서를 요구하는 반면, 해외에서는 다른 문화권의 시청자까지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현지화에 무게를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문화적 장벽이 낮은 소재를 검토하는 등 목표 시장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방송사도 해외 유통을 사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닛칸스포츠의 올해 4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와카마쓰 히로키 후지TV 제1스튜디오 국장은 해외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할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당시 후지TV는 이준기, 사카구치 켄타로가 주연한 '키드냅게임'을 일본 외 18개 국가·지역에 방송·배급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영상산업진흥기구(VIPO)의 올해 '재팬 드라마 퍼스트룩' 공고에도 해외 방송사·플랫폼과의 공동제작, 금융사업자 출자 등을 통한 자금 조달 다변화가 사업 목적으로 명시됐다.

협력이 늘면서 계약 실무도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콘진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한·일 콘텐츠 공동제작 위크 2026'에서는 한국 기업 15개사와 일본 기업 간 134건의 사업 상담이 진행됐다. 포럼과 워크숍에는 연인원 800여명이 참여했다. 현장에서는 기획 초기부터 IP 권리와 수익 배분을 정하고, 양국의 투자·제작 관행과 근로환경을 조율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론됐다.

이혜은 콘진원 도쿄비즈니스센터장은 "한·일 공동제작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 간 교류를 넘어 서로의 제작환경과 사업 방식을 이해하고, 실제 제작 과정에 필요한 정보와 경험을 충분히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