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반드시 학위논문을 제출해야 한다는 오랜 관행이 바뀌고 있다. 의료기술을 개발하거나 농업 현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도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다.
중국 정부는 연구논문보다 산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학원 학위 평가제도를 개편하기로 했다. 첨단기술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원 교육부터 실무형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구상이다.
"논문보다 현장 성과" 25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과 교육부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학위위원회 판공실은 최근 전문학위 대학원생이 실무 성과를 바탕으로 학위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첫 시범 적용 대상으로 번역·농업·임상의학·회계·예술 등 5개 분야를 선정할 계획이다. 기존 공학 분야에서 시행했던 실무 성과 중심 학위제도를 다른 전문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다.
핵심은 학위논문 대신 실제 연구개발이나 산업 현장에서 창출한 성과로 학위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대학원생의 논문 제출 의무가 일괄 폐지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전문학위 석·박사 과정 학생에게 논문 또는 실무 성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제도다.
중국 정부가 학위제도 개편에 나선 배경에는 산업 현장에 필요한 고급 전문인력 수요가 있다. 중국교육온라인의 지난해 전국 대학원생 모집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문석사 모집 예정 인원은 60만2000명으로 전체 석사 모집 계획의 68.99%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1.19%포인트 상승하며 처음으로 70%에 근접했다.
중국 교육부는 기존 논문 중심 평가 방식이 학생들의 실무 혁신 역량과 산업적 기여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논문 작성 능력뿐 아니라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한 성과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논문 없이 학위를 받은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 중국농업대에서는 농업 분야 석사과정 학생 5명이 직접 개발한 제품과 농업기술을 제출해 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이들은 작물 생산량과 경제적 수익을 높이는 밀 전용 비료와 화북지역 여름 옥수수에 적합한 친환경 비료 등을 개발했다. 연구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제품을 개발한 뒤 현장 검증까지 마친 성과를 인정받았다. 중국 농림계 대학에서 실무 성과로 학위를 신청한 첫 사례다.
中, 산업현장형 석·박사 키운다 의학 분야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베이징대 제3병원 정형외과 박사과정 학생 톄다자오는 선천성 경추 측만증 환자를 위한 새로운 임상 분류체계와 수술 전 계획을 수립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지난 6월 베이징대 학위평가위원회가 이를 승인하면서 중국 의학계 최초로 실무 성과를 통해 임상의학 전문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해당 소프트웨어는 중국 여러 의료 현장에서 초기 활용과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칭화대에서도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녜하이량이 지난해 실무 성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정부에 따르면 공학 분야 시범사업에서는 140여명의 석·박사과정 학생이 실무 성과로 학위를 신청했다.
다만 학위 취득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중국 정부는 학생이 지도교수의 감독 아래 성과물을 독립적으로 완성하거나 핵심 개발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산업계 전문가도 성과 검증과 학위 심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