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돌 잡는 아이들…스스로 묻고 답하며 사고력 '쑥'

입력 2026-10-22 17:50
수정 2026-10-23 02:18

지난 20일 오전 9시10분 서울 동숭동 서울대사범대학부설초 체험활동 교실. 1학년 2반 어린이들이 바둑판이 놓인 책상에 짝지어 앉았다. 이영신 프로기사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며 시작된 수업에서 아이들은 ‘촉촉수’를 배웠다. 도망가려는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연달아 포위해 돌을 잡아내는 기술이다.

“잘 두겠습니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배꼽인사를 하고 대국을 시작했다. 김재아 어린이는 “친구의 돌을 따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는 느낌”이라며 활짝 웃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답을 내놓는 시대, 가장 아날로그적인 게임 바둑이 인재를 키우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정답을 알아내는 기술 못지않게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이 다음달 21~22일 ‘쎈수학·신진서·한경 어린이 바둑대회’를 여는 이유다.


올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에서 로널드 베게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의 보고서를 소개했다. 그는 ‘빠른 AI’와 ‘느린 AI’로 활용법을 나누고 “완성된 답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생각에서 출발해 AI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로세로 19줄 바둑판에서 흑백 돌로 집을 짓고 뺏는 바둑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홀로 고민해 수를 결정하고, 상대의 수가 나오면 판세를 다시 읽고 대응해야 한다.

바둑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힘도 키워준다. 지난 7월 ‘쎈수학·한경 기신전’에서 신진서 9단은 바둑AI 카타고와의 두 점 접바둑 대결을 펼쳤다. 1국 완패 뒤 신 9단은 “너무 일찍 전투를 펼친 것이 패착”이라고 담담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2·3국에서 18집 반 우위를 지키는 전략으로 승리를 거뒀다. 실패에 주저앉지 않고 복기하며 자신만의 파훼법을 찾아낸 결과다.

기신전은 바둑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어올리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바둑교습소를 운영하는 하호정 프로는 “신 9단과 카타고 대국 이후 학부모의 문의는 물론 어린이 입문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바둑 교재를 제작하는 휴먼큐브 관계자는 “올 하반기 들어 바둑 입문서 판매량이 2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도 바둑이 조금씩 확산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2020년 도입된 바둑 공교육 사업 ‘창의적 체험활동 바둑 교육’은 6개 학교에서 시작해 올해 전국 21곳으로 확대됐다. 양형진 서울대사대부초 교장은 “아이들이 한 수를 놓기 전 조금 더 고민하는 모습이 점점 늘어난다”고 했다. 이우재 어린이는 “방과 후 교실에서도 바둑을 배워 30급을 땄다”고 자랑했다.

이날 한 아이가 바둑판 위에서 돌을 끌며 착수점을 고민하자 이 프로가 다가갔다. “지금 잡은 돌 다시 통에 내려놓고, 어디 둘지 먼저 결정하자.”

대국을 마칠 때도 아이들은 “잘 뒀습니다”며 인사를 나눴다. 바닥에 떨어진 돌까지 보물찾기하듯 모두 주워 담는 것으로 수업은 끝이 났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