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까지 따라 춤췄다"…전 세계 홀린 한국 캐릭터 정체 [인터뷰+]

입력 2026-10-22 19:30
수정 2026-10-22 20:02

유튜브 조회수 약 5억회, 액션 스타 성룡의 챌린지, 미국 ABC방송과 영국 가디언 뉴스 보도. 이 세 가지를 모두 이룬 캐릭터가 있다. 정작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낯선, 국산 애니메이션 지식재산권(IP) '씰룩'이다. 인기 애니메이션 '라바'를 만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밀리언볼트의 차기작이기도 하다. 연일 굿즈 연쇄 품절을 일으키는 일본 캐릭터 '치이카와'를 비롯해 글로벌 캐릭터 IP가 국내 소비시장을 파고드는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은 세계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할까.

지난 21일 한경닷컴은 서울 강남구 밀리언볼트 본사에서 씰룩을 제작한 안병욱 감독과 라바의 아버지인 맹주공 대표이사 겸 총괄감독을 만나 한국 애니메이션 IP의 가능성과 글로벌 시장 공략 전략을 물었다."귀엽기만 해선 부족해"…치이카와가 보여준 IP 성장 가능성

맹 대표는 최근 치이카와 열풍의 배경으로 귀여운 외모에 더해진 서사를 꼽았다. 그는 "치이카와는 귀엽지만 (세계관 안에서) 삶이 팍팍하다"며 "그런 서사가 입혀지니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숏폼처럼 짧은 에피소드도 한몫했다. 치이카와는 한 회당 1분30초 안팎으로 끝난다. 안 대표는 "지금 숏폼 플랫폼에 잘 맞는 길이"라고 짚으면서 내용으로도, 구성으로도 현재 애니메이션 수요 시장과 부합되는 요소가 있었다고 봤다.

애니메이션을 어린이 전유물로 여기던 인식이 바뀐 점도 영향을 미쳤다. 어릴 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된 뒤에도 캐릭터를 소비하면서다. 대표적으로 빵 품절과 카드샵 오픈런을 일으킨 '포켓몬 열풍'이 있다. 안 감독은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만의 것이라는 인식은 예전보다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이면 다 사랑받는다는 뜻은 아니다"며 "모든 IP와 콘텐츠가 경쟁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밀리언볼트 역시 성인 시청자를 주요 타깃으로 삼아왔다. 씰룩은 다양한 물범 캐릭터의 일상을 대사 없이 짧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강렬한 사건이나 극적인 결말보다 캐릭터들의 느긋한 행동과 분위기에 집중한다. 맹 대표는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게 씰룩의 특징"이라며 "일본 팬들은 캐릭터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구는 모습 등 무해한 코드를 좋아하더라"고 했다. 어린이 시청자의 경우 슬랩스틱 등 명확하고 기승전결이 확실한 포인트를 좋아하지만, 성인 시청자는 무해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에피소드 또한 즐길 수 있어 넓게 전연령대를 타겟팅했다는 설명이다.성룡도 따라 춘 토종 IP '씰룩'…대사 없이 세계 시장 뚫었다

씰룩은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빠른 속도로 해외 시청자를 확보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약 3개월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달성했다. 유튜브를 포함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총 1120만명의 팔로워가 씰룩을 시청하고 있다. 주요 시청 연령층은 Z세대와 25~34세인 밀레니얼 세대다. 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반려동물도 보는 애니메이션'으로 SNS에서 화제를 모아 중국까지 챌린지 인증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씰룩 캐릭터의 춤을 따라 한 영상이 퍼지면서 성룡이 행사에서 해당 춤을 따라 하는 장면까지 나왔다.

국내 넷플릭스에서는 키즈 부문 1위를 달성했다. 다만, 밀리언볼트 측은 어린이들이 아닌 성인들의 시청으로 집계된 것으로 봤다. 안 감독은 "넷플릭스에서 씰룩이 키즈카테고리에 있어 키즈에서 1등을 한 것"이라며 "바이럴 때문에 성인들이 궁금해서 씰룩을 본 것 같다. 북미 넷플릭스에서는 전체 9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라바와 씰룩 모두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은 글로벌 시장에서 강점으로 작용한다. 별도의 더빙이나 자막 작업 없이도 웃음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서다. 다만 안 감독은 단순히 해외 진출을 쉽게 하기 위해 대사를 없앤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범이나 벌레라는 캐릭터의 특성과 작품 속 세계관에도 자연스럽게 맞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해외 인기를 사업으로…AI로 제작 문턱 낮춘다
해외에서 얻은 인기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는 일은 또 다른 과제다. 안 감독은 "해외에서 바이럴이 일어나도 국내에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라이선스 사업을 할 때도 국내 인지도와 데이터를 참고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맹 대표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취약한 내수 기반을 지적했다. 일본처럼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소비하고 캐릭터를 장기간 즐기는 시장이 국내에는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너무 작고 돈을 벌기가 어렵다"며 "글로벌하게 성공하는 작품이 나와야 시장 자체의 파이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밀리언볼트가 처음부터 글로벌 진출을 노린 이유다. 맹 감독은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스튜디오가 있다는 정도는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밀리언볼트가 선택한 방법은 IP 비즈니스모델(BM) 확장과 인공지능(AI)이다. 밀리언볼트는 씰룩의 게임화도 고려하고 있다.

맹 대표는 새로운 기회로 AI를 주목했다. 제작비와 시간이 많이 드는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AI를 활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기획을 시험하고, 대중의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맹 대표는 과거에는 기획부터 파일럿 제작까지 거의 1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한두 달이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AI를 활용한 신작 10여 개를 개발하고 있으며, 약 1년 안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제작비를 줄여 한국 창작자들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기회를 넓힐 수 있다고 봤다. AI가 5배 성장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과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키라는 것이다.

물론 AI만으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맹 대표는 "AI가 '이렇게 만들어 달라'는 지시만으로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며 "결국 연출력과 창작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감독도 AI가 제작 도구로 자리 잡더라도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은 창작자의 연출이라고 덧붙였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