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의 교시인 ‘문화세계의 창조’에는 당장의 현실에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려는 지향이 담겨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흐름을 읽으며 미래를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경영교육도 마찬가지다. 기업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시장과 기술이 바뀌면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야 하고, 익숙한 문제도 다른 기준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강재식 경희대 경영대학원장에게도 이 질문은 오랜 화두였다. 중국 대륙 유학 1세대로 1995년 베이징대에서 중국을 연구한 그는 2000년대 초반 ‘경희대–칭화대 중국비즈니스 최고경영자(CEO) 과정’을 설립하고 기업인들과 중국 각지를 누비며 산업 변화와 지역별 성장 동력을 살폈다. 현장에서 얻은 지식을 비즈니스 교육으로 연결해 온 그는 2025년 경영대학원장에 취임한 뒤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 전반으로 고민을 넓혔다.
인공지능(AI)이 업무를 바꾸고 국제질서와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지금 경영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기술을 이해하는 데서 나아가 변화의 의미를 읽고 판단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강 원장은 교육과정 개편과 국제교류 확대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지난 10월 16일 강 원장을 만나 그가 그리는 경희대 경영학 석사과정(MBA)의 미래를 들었다.
Q. 취임 이후 전공편제 개편과 4학기제를 우선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재직자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필요한 배움의 깊이를 높이는 것이 개편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산업은 빠르게 변하는데 교육의 구조가 그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야 했습니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공별 운영과 주요 대학의 학제를 비교하고, 원우회(재학생 학생회)의 의견도 수렴했습니다.
전공편제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학과 간 경계를 낮추는 방향으로 개편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동시에 다른 분야의 지식도 접하고,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사고할 수 있도록 교육의 구조를 바꾸려는 취지입니다. AI와 데이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지식재산권 등 미래 경영에 필요한 주제도 공통교육과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4학기제의 핵심은 학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필요한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재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Q. 개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원칙은 무엇인가요.
“교육과정 개편이 학생들의 실질적인 배움과 역량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 기존 학제와 새 학제가 병행되는 지금은 입학연도와 과정에 따른 졸업 요건, 수강 기준을 정확히 안내해야 합니다. 학과장·주임교수와 행정실이 긴밀히 협력해 학생들의 학업을 돕고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도 세심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Q. 아시아 주요 MBA와 비교해 어떤 경쟁력을 갖추기를 바라시나요.
“경희대 경영대학원의 강점은 서로 다른 산업과 문화, 조직에서 쌓은 경험을 경영 교육의 자산으로 발전시켜 왔다는 데 있습니다. 제너럴(General) MBA는 현업의 전문성을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와 연결하고, 글로벌(Global) MBA에는 중국을 비롯해 일본·동남아·러시아·서구권 등 다양한 지역의 유학생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밀리터리(Military) MBA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군 대상 MBA 재학생과 전국 12개 교육망, 군 간부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각 과정의 전문성을 더욱 깊게 다지는 동시에 아시아 각국의 시장과 산업을 비교하고 서로의 경험을 배울 기회를 넓히고자 합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현장의 문제를 여러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법을 찾는 능력은 국제경영 환경에서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2030년 ‘아시아 톱10 MBA 스쿨(Asia Top 10 MBA School)’은 이러한 교육 기반을 질적 성장과 국제적 위상으로 연결하기 위한 목표입니다.”
Q.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려면 무엇부터 달라져야 하나요.
“교수진의 전문성이 수업에 충분히 반영되고, 학생들이 현장의 문제를 분석해 스스로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국제교류 역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을 나누는 배움의 기회가 돼야 합니다. 5년째 이어온 김장 행사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한국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입니다.
문화에 대한 이해는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합니다. 저 역시 중국문화를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낯설었던 샹차이를 즐겨 먹게 됐습니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국제 비즈니스에서도 상대의 관점과 문화를 이해해야 더 나은 협력과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과 금융에 대한 안목, 도전과 창업의 정신을 배우는 일도 중요합니다.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박현주 회장의 경험은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과 도전의 의미를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60주년을 맞아 마련한 이번 초청 강연도 학생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시장을 바라보고, 국제적인 감각과 경영 통찰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Q. 국제화 전략과 실행 사업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12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주요 국립대학을 방문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중국 사회과학원과 베이징대, 쓰촨대 등과 학생·교수 교류, 공동연구, MBA·최고경영자(CEO) 교육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교류를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연구의 성과로 축적하고자 합니다.
아시아 기업과 산업이 기술·시장·공급망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공동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수업에서 활용할 사례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동강의를 비롯해 상대 대학에서 직접 배우는 단기연수 프로그램도 추진해 학생들이 다양한 국가의 산업과 경영 환경을 경험할 기회를 넓히고 싶습니다.
'아시안 비즈니스 포럼(Asian Business Forum)'도 이러한 국제화 전략의 하나입니다. 아시아의 경영 현안을 중심으로 서너개 대학의 교수와 학생, 기업인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Q. AI와 디지털 전환 시대에 어떤 교육을 강화하시나요.
“AI 교육은 ‘우리 조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도구를 다루는 능력과 이를 경영에 적용하는 판단력을 함께 길러야 합니다. 업무를 분석해 적용 과제를 설정하고, 비용과 기대효과는 물론 데이터의 신뢰성과 조직에 미칠 변화까지 검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객 상담에 AI를 도입할 때는 응답 속도와 비용 절감 효과만 볼 것이 아니라 잘못된 답변의 위험, 고객 신뢰, 직원의 역할 변화까지 살펴야 합니다. 의료·물류·콘텐츠 등 산업별 특성과 업무 환경에 따라서도 적용 방식과 고려해야 할 조건은 달라집니다. 실제 현장의 문제를 바탕으로 AI 도입 방안을 설계하고, 그 타당성과 판단 근거를 설명하는 실습형 교육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Q. AI와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MBA가 길러야 할 역량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변화를 읽고 우선순위를 판단하며, 사람들과 함께 실행하는 힘입니다. AI가 분석을 제공하더라도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 그 결과에 어떻게 책임질지는 경영자가 판단해야 합니다.
국제경영에서는 시장과 제도, 공급망과 경제안보의 조건이 연결돼 있습니다. 그 관계를 읽어야 자신의 기업에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판단을 실행으로 바꾸는 데는 협상과 소통이 중요합니다. 전문성과 국제적 안목을 넘어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역량까지 갖춘 인재를 키우고자 합니다.”
Q. 산업계와의 협력을 교육과 학생 지원에 어떻게 활용하고 계시나요.
“산학협력은 산업 현장의 요구를 교육과 연구로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한국서부발전과는 ESG와 에너지산업 인재 양성, 감사교육원과는 전문교육 및 교육·연구 교류,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와는 콘텐츠·공연산업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협력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협약기관마다 필요한 역량과 현장의 과제가 다른 만큼, 이를 교수진과 함께 살펴 현장 사례와 교육과정,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과제로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제의 범위와 자료 활용 방식, 결과물의 기준을 협의하고 현장의 피드백까지 교육에 반영해야 실질적인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관별 교육 수요와 학생들의 관심 분야를 연결하고, 현장에서 도출한 분석 결과를 수업 개선과 후속 연구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자 합니다. 협력이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학습과 연구로 이어질 때 학생들의 직무역량을 높이고 경력 개발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Q. 다음 60년을 위해 바꿀 것과 지킬 것은 무엇인가요.
“교육의 시간적 범위입니다. 입학과 졸업 사이에 머무는 교육이 아니라 배움이 이후의 직무와 조직, 삶의 변화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살펴야 합니다. AI가 업무를 어떻게 바꾸는지, 공급망 재편이 기업의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읽고 판단하며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학생들이 당장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와 산업의 흐름을 읽으며 다음 도전을 준비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현장의 필요에 응답하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 온 전통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해 온 것이 경희대 경영대학원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이 전통을 이어가되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세 분야 MBA의 특성화를 심화하고 국제교류와 산학협력, 동문 네트워크를 실질적인 배움의 기회로 연결해 교육의 깊이와 폭을 넓히겠습니다.
개원 60주년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경희대 경영대학원이 다음 60년에도 학생과 산업, 세계의 변화에 답을 주는 교육기관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