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에서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요"…대형 아파트의 굴욕 [시장톡]

입력 2026-10-23 06:30
수정 2026-10-23 07:07
"요즘 반포동에선 대형 평수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손님은 가뭄에 콩 나듯 합니다. 매매가격이 너무 많이 오른 데다 팔고 싶을 때 제때 팔기 어려운 환금성 문제까지 고려하면, 선뜻 대형 아파트를 품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는 분위기입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 아파트는 '거거익선'(巨巨益善: 크면 클수록 좋다)이 트렌드였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서초구 반포동 A 공인 중개업소 관계자)
대출 규제가 대폭 강화되고 보유세 등 세금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대형 면적대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서울 집값이 전반적으로 고점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대형 평형의 상대적으로 높은 집값과 낮은 환금성이 매수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3일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에서 거래된 전용면적 85㎡ 초과 대형 아파트 거래 건수는 총 920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1만3153건과 비교해 30%(3950건) 급감한 수치다.

반면 전용 85㎡ 이하 중소형 아파트의 거래 감소 폭은 미미했다. 올해 1~8월 서울의 전용 85㎡ 이하 아파트 거래 건수는 6만504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7809건)보다 4.1%(2766건) 감소하는 데 그쳤다. 서울 전체 아파트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8.3%(8만 962건→7만 4246건)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올해 서울 아파트 거래 절벽 현상은 대형 평형 기피가 사실상 주도한 셈이다.

대형 면적대 거래의 월별 흐름을 살펴보면 올해 1월 1183건으로 출발해 5월(1661건)과 6월(1471건) 일시적인 거래 반등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7월(1068건) 다시 1000건 선으로 줄어든 데 이어 8월에는 704건으로 급감했다. 지난 8월 3일 정부가 세제 개편안을 통해 고가 주택에 대한 과세 강화 방침을 발표한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자치구별로는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한강 벨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거래 절벽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초구의 경우 올해 1~8월 대형 거래량이 797건에 그쳐 전년 동기(1611건) 대비 반토막(-50.5%) 났다. 성동구 역시 지난해 557건에서 올해 217건으로 61.0% 급감했고, 강동구(-53.6%), 마포구(-45.9%), 영등포구(-35.4%), 송파구(-33.6%), 강남구(-29.1%) 등 전통적인 인기 고가 주거지역 전반에서 대형 면적 거래가 일제히 위축됐다.

고가 지역에서 대형 아파트 거래가 둔화한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집값 상승에 따른 자금조달 부담과 대출 규제 강화가 꼽힌다. 이들 지역에서 전용 85㎡ 초과 대형 평형은 대다수 매매가가 고가 주택 기준을 훌쩍 넘는다. 정부가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에 대한 대출 한도를 4억원으로, 2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2억원으로 제한하면서, 현금 동원력이 약한 매수자는 대출을 끼고 대형 평형을 매수하는 길이 사실상 막힌 것이다.

여기에 가중되는 세금 부담도 대형 평형 기피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형 아파트는 공시가격 가액 자체가 높아 1주택자라고 하더라도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상승에 따른 세 부담이 중소형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한다. 여기에 고가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12억원)을 초과하는 금액 역시 커 향후 매도 시 양도세 부담이 상당하다. 매수자로서는 매매가 상승에 따른 기대 실익에 비해 세금 부담이 과중해지는 셈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소형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대형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뚝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용면적 40~60㎡ 구간의 매매가격지수는 지난해 말보다 6.72% 상승했지만, 전용 135㎡ 초과 대형 아파트는 2.09%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135㎡ 초과 대형 아파트가 5.25% 오르며 상승률 1위였으나, 1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가격 및 세금 부담과 함께 재건축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대형 면적 아파트의 거래 절벽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최근 시장에서는 무리하게 대형을 고집하기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고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진 중소형이나 신축 아파트로 이동하려는 '갈아타기' 수요가 주를 이룬다"며 "예전에는 대지 지분이 넓은 대형을 사서 재건축 수익성을 노리는 '거거익선' 수요가 많았지만, 최근 공사비 급등과 사업 지연 여파로 대형의 투자 매력이 대폭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요층이 두터운 중소형이나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진 신축 중심의 실속형 '갈아타기'가 시장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도 대형 면적대 거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며 "신규 공급과 재건축 설계 역시 중소형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데다 실속을 중시하는 수요 구조가 정착된 만큼, 대형 평형의 거래 위축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