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규제는 인공지능(AI)과 플랫폼 등 신산업에서 유럽 기업의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선제적인 규제 체계 도입이 관련 기업의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U는 2024년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인 ‘EU AI법’을 제정했다.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 수준에 따라 규제를 차등 적용하고, 고위험 AI에는 별도 의무를 부과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8월부터는 범용 AI 모델 제공자에게 기술 문서 작성과 저작권 준수, 학습데이터 관련 정보 공개 등의 의무가 적용되고 있다.
이는 유럽 AI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의 ‘AI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민간 AI 투자액은 2858억달러(약 382조5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유럽 전체 투자액은 209억달러로 미국의 7.3%에 불과했다. EU 회원국 중 투자 규모가 가장 큰 프랑스도 43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미국 빅테크와 경쟁할 만한 기술 기업도 부족하다. 2024년 발표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EU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50대 기술 기업 가운데 유럽 기업은 네 곳에 불과했다. AI산업의 기반이 되는 클라우드 시장도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시너지리서치그룹에 따르면 유럽 클라우드 시장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의 합산 점유율은 약 70%에 이른다. 유럽 사업자의 점유율은 2017년 29%에서 2024년 15%로 떨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법은 유럽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법안에서 유럽이 혁신보다 규제를 앞세운다는 비판을 대표하는 사례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