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장. 여야 의원은 출범한 지 넉 달 된 한미전략투자공사의 박종원 사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1일 1호 대미투자 프로젝트인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발전소 투자금 24억달러(약 3조2000억원)가 송금된 지 열흘 뒤에야 공사 내부 리스크관리 회의가 처음 열린 것이 도마에 올랐다. 박 사장이 “(송금은) 운영위원회 결정이며 공사 역할은 사후 리스크 관리”라고 해명했지만 의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2·3호 사업인 원전 투자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의 수익성 자료를 내놓으라는 추궁에 박 사장은 “비밀유지협약(NDA)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진땀을 흘렸다. “한국이 ATM이냐” “허울뿐인 수장이냐”는 고성이 오갔다.
냉정히 말해 공사는 대미투자를 좌우할 권한이 없다. 미국이 사업을 제안하면 상업성을 1차 검토하는 곳은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끄는 ‘사업관리위원회’이고, 집행은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인 ‘운영위원회’가 맡는다. 두 위원회가 결정하고, 공사는 사후관리를 담당하다 보니 “문제가 터지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는 지적도 일견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한 전직 통상관료는 “앞으로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커지고 정쟁이 이어질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전략투자는 대미 무역을 지키고,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치러야 할 비용이다. 1~3호 투자 모두 한국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공사비와 금리 변동 등 불확실성투성이다.
이번 협상도 미국은 막판까지 요구치를 올렸고, 사소한 이해관계에도 양국은 치열하게 대립했다. 그런데 국회는 ‘깜깜이 투자’라며 계약 조건과 수익률 산식부터 내놓으라고 협상팀을 몰아붙였다. 한 통상관료는 “아찔한 외줄타기였다”고 말했다.
관가에선 투자가 시작되기도 전에 국회가 공무원을 몰아치면 복지부동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국감에서도 지적됐듯 전략투자공사는 아직 정원 50명 중 32명밖에 채우지 못했고, 투자본부장은 임명 두 달 만에 사표를 냈다. 감사와 대미투자팀장 등 5개 주요 보직도 공석이다. 앞으로 감사원 감사와 사법적 책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미투자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성패는 리스크를 줄이고, 우리 기업의 몫을 챙기는 치열한 사후관리에 달렸다. 시작부터 칼날을 들이댄다면 실무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미투자가 보신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국회는 책임부터 묻는 대신 통상관료와 공사 실무진에 면책이라는 방패를 쥐여주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