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거장' 파보 예르비, 장대한 북유럽의 숲을 그렸다

입력 2026-10-21 17:34
수정 2026-10-22 00:38

북유럽의 대자연을 음악으로 담아내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EFO)는 침엽수림과 광활한 바다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EFO를 창단한 에스토니아 출신 거장 파보 예르비는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직접 포디엄에 올라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한국계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객석을 발트해를 마주한 숲으로 몰아넣었다.

파보 예르비와 무대에 오른 EFO는 에스토니아 작곡가인 에르키스벤 튀르의 ‘액션-패션-일루전’을 연주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더블베이스 8대가 내는 두툼한 저음 울림은 북유럽의 장엄한 침엽수림을 떠올리게 할 만큼 묵직했다. 도도하고 무게감 있는 현악 음색은 이날 공연에서 EFO가 여러 차례 드러낸 특색이었다.

클라라 주미 강과는 고전주의 형식과 낭만주의 표현이 잘 섞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악단은 반응이 매번 기민하진 않았지만 지휘자가 명확히 지시한 부분에선 디테일을 살렸다. 1·2악장 모두에서 악단보다 독주자의 음색이 살짝 더 뜨거운 경향이 도드라졌다. 두 선율 사이의 온도차는 이질적이기보단 서로의 매력을 살리는 쪽에 가까웠다. 독주자는 보잉을 끝낼 때마다 힘을 쏟길 반복하며 잘 절제된 애절함을 드러냈다.

공연 2부는 에스토니아와 바다를 마주하는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이었다. 1악장 시작부터 현악 소리가 두껍게 쌓이며 무대 위에 숲이 생긴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숲속 사이로 호른 소리가 뛰어올랐다가 사라지길 수차례, 지휘자는 음량을 바꾸는 과정에 곡선미를 가미해 듣는 맛을 살렸다. 2악장은 생동감이 넘쳤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용솟음치듯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3악장에선 관악기들이 낸 소리의 물길이 거대해졌다. 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때리는 더블베이스는 폭포수가 떨어지듯 박력이 넘쳤다. 단원 저마다 개성 넘치는 소리를 뽐내다가도 중요한 순간에 한데 수렴하는 모습에선 저마다의 음악을 즐기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강점이 부각됐다. 이날 공연에선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은·윤보나·김원호, 더블베이시스트 홍성혁 등 한국인 연주자들도 활약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