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용 '그리드코드'를 연내 마련하기로 하면서 이미 추진 중인 사업까지 새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앞서 AI 데이터센터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간 전력 직거래 방안이 법안에서 빠진 데 이어 전력망 접속 기준까지 추가될 경우 투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8월 'AI 데이터센터 연구회'를 출범하고 AI 데이터센터 전용 그리드코드를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그리드코드는 발전소나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이 전력망에 연결될 때 지켜야 하는 접속 기준이다. 전력망에 이상이 생겨도 시설이 한꺼번에 이탈하지 않고 버티거나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능 등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그동안 주로 발전설비에 적용돼 왔다.
AI 데이터센터가 별도 적용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전력 사용 특성 때문이다. 기후부는 AI 연산 과정에서 전력 소비량이 짧은 순간 크게 변하는 대형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어떤 시설에 언제부터 새 기준을 적용할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 울산과 동해 등에서는 G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목표로 한 사업이 이미 첫 단계 공사에 들어갔거나 착공을 앞두고 있다.
조 의원 측은 설계를 마친 사업까지 새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설계 변경과 완공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 장비가 차지하는 공간 때문에 서버 수용 용량이 1% 줄어들 경우 1GW 기준 10MW가 감소해 중소형 데이터센터 한 곳에 해당하는 규모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전력 조달 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앞서 있었다. 지난 4월 국회 과방위를 통과한 AIDC 특별법에는 AI 데이터센터가 LNG 발전소에서 전력을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기후부 반대 속에 5월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에서는 관련 내용이 빠졌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후부는 업무협약을 맺고 국가 전력망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조 의원은 LNG 발전소와의 직거래가 빠진 데 이어 전력망 접속 기준까지 강화될 경우 투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LNG 직거래는 막고 국가 전력망으로 전기를 받으라더니, 이제 와서 그 문턱을 높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전력망 연결 지연이 데이터센터 투자에 영향을 준 사례도 나왔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영국 정부가 자국 최대 '소버린 AI 데이터센터'로 내세운 에식스주 로턴 사업에서 최근 발을 뺐다.
현지 전력망 운영사가 충분한 전력을 2030년대 초·중반에야 공급할 수 있다고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사업자인 엔스케일(Nscale)은 현장 자체 발전 등 대체 전원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 의원은 과기정통부가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과기정통부와 기후부는 업무협약에서 GW급 AI 데이터센터 지원을 위한 공동 전담조직 구성에 합의했고, 과기정통부는 지난 7월 기후부 등이 참여하는 'AIDC 메가프로젝트 범부처 지원 TF'도 출범시켰다.
조 의원은 "전력망 안전에 필요한 기준은 갖추되, 이미 추진 중인 사업에는 그리드코드 적용을 원칙적으로 제외해야 한다"며 "AI DC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가 범부처 협의 창구를 적극 활용해 투자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