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이재현 회장 '혜안' 통했다…"햇반, 연매출 1.5조 브랜드로"

입력 2026-10-25 08:30
수정 2026-10-25 09:51

"밥 먹었니?"

한국인은 안부를 묻고 약속을 잡을 때도 밥을 이야기한다. CJ제일제당이 30년 전 내놓은 햇반은 이런 한국인의 일상을 파고들며 빠르게 자리잡았다. 직접 지어 먹던 밥을 사 먹는 일상으로 바꿨다. 첫 광고 모델인 배우 김혜자가 "내가 해먹는 것보다 맛있다"고 소개했던 즉석밥은 이제 해외 소비자가 스테이크와 부리토에 곁들이는 음식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1일 충북 진천 CJ블로썸캠퍼스에서 '햇반 30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8년까지 햇반을 국내외 연매출 1조5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환산 기준으로 지난해 매출은 1조1000억원을 웃돌았다. 출시 30주년인 올해는 누적 매출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는 잡곡밥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개인별 건강 고민에 맞춘 제품을 확대한다. 식문화 유행과 계절 수요를 반영한 제품도 늘린다. 해외에서는 '비비고 찰진 백미밥(bibigo Sticky White Rice)'을 앞세워 한국식 밥문화를 알리고, 향후 일상적인 한식 밥 메뉴로 제품군을 확장해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해외에서 '덤플링'으로 통하던 제품에 '만두'를 알린 경험을 밥에도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비상용 사각 용기에서 매일 먹는 밥으로
햇반은 "10~20년 후를 내다보는 미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의지에서 출발했다. 밥을 사 먹는 시장을 만들기 위한 투자를 거쳐 1996년 12월 국내 최초의 무균포장밥으로 출시됐다.

초기 용기는 사각형이었다. 갑자기 밥이 부족할 때 꺼내 먹는 비상식 성격이 강해 쌓아두기 편하도록 설계했다. 이후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기 편하고 밥공기를 연상시키는 둥근 형태로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 1~2인 가구가 늘고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서 집에서 지은 밥을 대신하는 일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숙진 CJ제일제당 식품마케팅실장 겸 한국사업본부장은 "저 역시 독립 후 밥솥이 없다"며 "필요할 때마다 햇반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바탕에는 밥맛이 있다. CJ제일제당은 쌀 재배 단계의 모니터링과 수매 점검부터 건조·보관·도정·취반까지 관리한다. 원료와 품종 선정에 이어 무균공정, 포장, 영양설계까지 연구개발 범위에 포함한다.

오예진 CJ식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갓 수확한 벼를 건조하고 보관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공정이 시작된다"며 "1년 쌀 품질을 좌우하는 첫단추"라고 설명했다. 수확 이후 원료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완제품의 밥맛까지 좌우한다는 의미다.

도정도 매일 조건을 조정한다. 오 수석연구원은 "도정을 한 순간부터 산소와 접촉하면서 묵은 냄새가 날 수 있는 산패가 이뤄지고, 전국 각지 품종에 따라, 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도 도정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서 그에 맞는 미세한 차이를 매일매일 조절하며 도정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밥맛 경쟁에서 영양설계로
햇반은 출시 당시 반도체 공정 수준의 청결도를 적용한 무균화 포장밥 제조 기술을 도입했다. 이후 도정 기술과 산소 침투를 막는 포장 기술을 발전시켰다. 곡물과 다양한 원물을 담기 위한 진공가압살균 기술, 용기·공정 기술까지 개발하면서 해외 출원을 포함해 총 267건의 브랜드 관련 특허를 확보했다.

무균밥 생산 과정에서는 용기를 밀봉하기 전에 살균하는 오픈 살균 방식을 활용한다. 오 수석연구원은 "처음에는 일본에서 도입한 기술인데, 이 라인을 운영하고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자체 노하우가 쌓였다"며 "현재는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생산 기술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곡물을 적절한 비율로 섞는 데서 나아가 쌀과 곡물의 영양 구성을 설계하는 기술을 강화한다.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늘리고 탄수화물과 열량을 낮추는 영양설계와 성형쌀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편리하고 맛있는 밥에서 개인의 식생활과 건강 관리에 맞춰 선택하는 밥으로 제품을 세분화하는 것이다.

오 수석연구원은 "단순히 '맛있는 밥'을 만드는 데에서 나아가 소비자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더 좋은 탄수화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주 햇반 매출 49% 증가
해외 사업의 중심은 미국이다. 햇반은 현재 미국·캐나다·호주·멕시코 등 60여개국에 진출해 있다. 2017년 비비고 브랜드로 미국 가공밥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시장조사업체 서카나의 'Ready to Serve Rice' 분류 기준 미국 시장 규모는 약 1조5000억원이다.

최근 5년간 햇반 해외 매출은 연평균 약 30% 늘었다. 전체 햇반 매출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8%에서 지난해 15%로 높아졌다.

올해 2분기 CJ제일제당 미주 식품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한 1조2257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만두 매출은 31%, 햇반 매출은 49% 늘었다. CJ제일제당 전체 해외 식품사업 매출이 처음으로 국내를 넘어선 가운데 햇반도 해외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에서 쌀을 소비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점도 기회로 보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시장조사업체 민텔을 통해 진행한 현지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4.6%가 쌀을 사는 이유로 '건강한 선택지'를 꼽았다. 미국 소비자들이 웰니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쌀을 빵 등 다른 탄수화물 식품의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활용 범위도 볶음밥과 스시·롤 등 아시아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치킨과 스테이크에 곁들이거나 부리토와 라이스 볼 재료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온 즉석밥과 냉동밥, 김밥 등 상품밥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주 1회 이상 쌀을 먹는 미국 소비자 비중은 2023년 37%에서 지난해 45%로 상승했다.



김 본부장은 "교포들이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의 밥을 사이드 디쉬로 먹는 방식이 늘었더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걸 보면 샐러드볼처럼 먹고, 브리또로 만들어 먹었다. 그들의 일상에 우리의 밥이 깊숙하게 침투해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찰기가 적고 밥알이 잘 떨어지는 쌀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한국식 밥의 특징을 알리는 데 주력한다. 현재 백미 중심인 수출 상품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밥 제품으로 확대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김 본부장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새로운 밥의 기준은 한국의 밥"이라며 "현재 수출은 백미로만 이뤄지고 있는데, 한국의 포트폴리오가 차근차근 미국과 유럽에 확대된다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브랜드와 우리의 기술로 어떻게 밥을 더 새롭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계획을 짜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천(충북)=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