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제인 오스틴? 익숙해도 깊이 스며드는 설렘 ‘이성과 감성’

입력 2026-10-21 11:22
수정 2026-10-21 11:26

제인 오스틴의 숨결이 다시 한번 스크린에 피어났다. 오는 10월 28일 개봉하는 영화 <이성과 감성>을 통해서다. 오스틴의 첫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려는 언니 ‘엘리너’와 감정에 충실한 동생 ‘메리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과 삶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다. 200년 넘게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려온 두 자매의 이야기가 조지아 오클리 감독의 손길을 거쳐 다시 관객을 만난다.

혹자는 “또 제인 오스틴?”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꾸준히 재해석돼왔다. <이성과 감성>만 해도 엠마 톰슨과 케이트 윈슬렛이 자매로 호흡을 맞춘 이안 감독의 1995년작이 있다. <오만과 편견> 역시 콜린 퍼스 주연의 1995년 TV 시리즈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조 라이트 감독의 2005년 영화로 익숙하다. 2020년에는 <엠마>가 새롭게 영화화됐다. 시대와 배우, 연출자의 시선이 바뀔 때마다 오스틴의 세계는 저마다 다른 얼굴로 되살아났다.

결국 이번 작품의 관건도 원작의 결을 살리면서 그 위에 어떤 새로운 색채를 입히느냐에 있다. 그런 면에서 <이성과 감성>은 고전의 매력을 탄탄한 만듦새로 담아내는 데 충실하다. 두 자매를 처음 만나는 관객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도록 서사를 풀어내고, 이성과 감성이라는 대비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차근차근 쌓아간다.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서로 다른 선택은 시대를 건너 관객과 맞닿는다.

재치 있는 대사와 당시 영국 사회를 담아낸 배경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인물들이 감정을 주고받는 순간마다 말맛이 살아 있고, 그들을 둘러싼 관습과 생활상은 사랑을 좌우하는 현실의 조건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여기에 너르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어우러져 고전 특유의 낭만을 풍성하게 채운다.



무엇보다 영화 속 두 축을 이루는 자매의 연기가 섬세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과 <트위스터스>의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이성을 따르는 언니 엘리너를, <물의 연대기>의 에스메 크리드마일스는 감성에 충실한 동생 메리앤을 맡았다. 두 배우는 감정을 다스리려는 사람과 감정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이면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는다.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은 달라도 사랑의 무게까지 다른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통과하는 두 자매의 얼굴은 익숙한 고전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사랑’과 ‘조건’ 사이에서 관계를 저울질하는 모습이 오늘날과 묘하게 겹쳐진다는 점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마음이 향하는 곳과 현실의 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은 두 세기가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다. 특히 감정마저 공개하고 인증하려는 오늘의 풍경 속에서 영화는 오래된 질문을 새롭게 건넨다. 열정은 직접 표현해야만 진실한 것인가. 때로는 절제야말로 깊은 열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두 자매를 따라 이 질문을 곱씹는 것도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다.

다만 앞선 작품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새로운 ‘1인치’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원작을 충실하게 옮겨온 만큼 이번 영화만의 해석이나 색채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익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인 오스틴의 서사는 여전히 스크린을 채울 힘이 있고, 영화는 그 안의 재치와 낭만, 사랑의 복잡한 표정을 고르게 길어 올린다. 바람 부는 가을, 가족과 함께 큰 스크린으로 만나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