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셀프 출품 논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입력 2026-10-21 10:36
수정 2026-10-21 11:27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자신의 소장품을 특별전에 출품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글씨를 독립운동가의 작품으로 잘못 소개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시품 검증 과정과 소장자 정보 비공개 문제를 놓고 여야 의원들의 비판을 받은 지 이틀 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1일 유 관장이 개인 소장 유묵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전시를 둘러싼 논란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유 관장은 입장문에서 "저는 오늘 국립중앙박물관장직에서 물러나고자 사의를 표명한다"며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내주신 깊은 신뢰와 우리 박물관 직원들이 쌓아 올린 가치가 저의 개인적인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비판은 자신의 책임이라며 훼손된 박물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지난 7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선보인 서예 작품 '일반시국은'의 작가를 잘못 표기하면서 불거졌다. '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의미를 담은 이 작품은 당초 독립운동가 박원근(1912~1950)의 글씨로 소개됐다. 그러나 작품에 쓰인 '박원근'이라는 이름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의 다른 이름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물관은 지난 8월 10일 작품을 전시장에서 철거한 뒤 서예와 근현대사, 고문헌, 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명에게 검증을 맡겼다. 조사 결과 지난달 7일 해당 작품이 박중양의 글씨라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작품의 소유자가 유 관장 본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등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유 관장은 2019년 온라인 경매에서 해당 작품을 5만원에 구입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유 관장의 추천을 받아 작품을 대여해 전시에 활용했고, 필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소장자의 설명 등을 참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품 철거와 진위 검증 결과 발표 과정에서 소장자가 현직 관장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전시품 선정의 공정성과 검증 절차를 둘러싼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유 관장의 책임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사퇴를 요구했고, 김석기 의원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작품을 애국지사의 글씨로 소개한 경위를 추궁했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소장품 출품 과정과 검증 부실, 소유자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이유 등을 문제 삼았다. 당시 유 관장은 작품에 대한 판단 착오와 소장자 비공개 문제를 사과하며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거취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유 관장은 이날 사의 표명과 함께 "이번 일로 인해 실망하고 상처받으신 국민 여러분과 애국지사 유족 분들, 그리고 박물관 직원 분들께 깊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박물관 연구진이 오랜 기간 준비한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의 의미까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유 관장은 지난해 7월 21일 제13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해 약 15개월간 재직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로 알려진 미술사학자로 영남대 교수, 문화재청장, 명지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취임 이후 박물관의 대중화와 해외 교류 확대, 한국 문화유산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추진해 왔다.

유 관장은 "비록 1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영예로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영광이었다"며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