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넋 서린 현충사서…고즈넉이 마주한 이순신

입력 2026-10-21 15:58
충남 아산의 가을은 걷는 만큼 풍경이 달라진다. 곡교천을 따라 황금빛 은행나무 터널을 걷다 보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서린 현충사에 닿고, 발길을 외암민속마을로 돌리면 돌담과 초가, 고택이 어우러진 600년 옛 마을 풍경이 여행객을 맞는다. 단풍과 은행나무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전통문화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아산 가을여행의 매력이다. 화려한 관광시설보다는 오래된 나무와 고택, 역사적 인물이 남긴 이야기가 여행의 중심을 이룬다. 계절의 풍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아산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함께 만나는 가을길이다.◇은행길 따라 충무공의 시간 속으로아산 가을여행의 출발점은 곡교천 은행나무길이다. 곡교천변을 따라 약 2.2㎞ 이어지는 길에는 수백 그루의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도로와 산책로를 뒤덮어 황금빛 터널을 이룬다.

걸어서 천천히 풍경을 즐겨도 좋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면 곡교천 일대를 더욱 넓게 둘러볼 수 있다. 현충사 방향 은행나무길 입구의 자전거 대여소에서는 1인용과 2인용, 어린이용 자전거 등을 빌릴 수 있다. 은행나무길 일대에는 보행로 조명과 투광조명, 곡교천변 빛 조형물도 설치돼 낮과는 다른 가을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은행나무길에 자리한 이순신관광체험센터 ‘여해나루’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미디어아트홀에서는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순신을 넘어 그의 삶과 내면을 디지털 콘텐츠로 풀어낸 전시를 선보인다. 단순히 충무공의 전투 기록을 접하는 데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이순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은행나무길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현충사로 이어진다.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는 아산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가을에는 한옥 지붕과 정갈한 사적지, 연못 주변의 단풍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경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충무공이 살았던 옛집과 활터, 유물 등을 통해 그의 삶과 호국정신을 자연스럽게 되짚어볼 수 있다. 은행나무길의 화려한 색감과 현충사의 차분한 풍경이 대비를 이루는 것도 이 구간의 매력이다.◇600년 돌담길에 남은 조선시대 풍경아산의 가을을 보다 느리게 즐기고 싶다면 외암민속마을로 향하면 된다.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외암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농촌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곳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 사이로 초가와 기와집이 자리하고, 집집마다 감나무와 오래된 정원이 어우러져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외암민속마을의 백미는 약 5㎞에 이르는 돌담길이다. 자연석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담 너머로 오래된 고택과 초가가 번갈아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에는 붉게 익은 감과 누렇게 물든 들녘으로 마을 풍경에 색이 더해진다. 유명 관광지를 짧게 보고 이동하는 여행보다 골목과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걷는 여행에 더 잘 어울린다.

마을에는 조선 후기 상류주택의 모습을 간직한 고택이 남아 있다. 건재고택에서는 전통 한옥의 공간 구성과 정원의 아름다움을 살펴볼 수 있고, 추사 김정희의 친필 현판을 비롯한 옛 흔적도 만날 수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와 전통 정원, 민속관 등을 함께 돌아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자연환경을 생활공간에 어떻게 활용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옛집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주민의 삶과 전통이 이어지는 마을이라는 점도 외암민속마을만의 특징이다.

아산 가을여행의 강점은 이름난 명소 세 곳을 따로 찾아다니는 데 있지 않다. 곡교천의 황금빛 은행나무길에서 시작해 현충사에서 충무공의 역사를 만나고, 외암민속마을 돌담길에서 오래된 생활문화와 마주하는 하나의 여행길이 완성된다. 자연의 색과 역사적 기억, 전통마을의 시간이 가까운 거리에서 이어지는 곳. 가을이 깊어질수록 아산을 천천히 걷고 머물 이유가 함께 늘어난다.

아산=강태우 기자 kt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