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노벨경제학상이 던진 '재정 신뢰' 경고

입력 2026-10-20 17:45
수정 2026-10-21 02:33
노벨경제학상 선정에서 ‘시의성’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경제학자의 이론이 학문적 성과로 인정받으려면 시간의 검증을 견뎌야 한다. 학문적으로 중요하면서 당대에 교훈까지 주는 학자를 적시에 찾아내 시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특정 시기에 특정 학자를 선정한 이유가 잘 설명되는 사례는 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케인스주의의 한계가 드러나자 케인스적 개입주의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974년)와 밀턴 프리드먼(1976년)이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지난주 수상자로 발표된 로버트 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마이클 우드퍼드 컬럼비아대 교수는 언제 노벨경제학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거시경제학계의 거목이다.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이 가계와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 기반해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을 분석하는 새로운 모형을 발전시킨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의 연구가 신(新)케인지언 경제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각국은 코로나19 사태 때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동원했다. 이후 세계 경제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선진국의 정부 부채도 크게 늘었다. 안정되는 듯하던 물가는 올해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한 공급 충격과 인공지능(AI) 투자 붐에 따른 수요 충격이 동시에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막대한 국가 부채에 따른 이자 부담은 통화정책의 운신 폭을 좁히고, 주요국 국채 금리에도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두 교수가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런 환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통적 통화정책만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다. 홀과 우드퍼드의 연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대’다. 가계와 기업은 과거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며 소비·투자와 가격을 결정한다. 재정·통화정책이 앞으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판단의 대상이다. 따라서 정책의 효과는 정책 그 자체뿐 아니라 경제주체가 그 정책의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한국에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재정 신뢰’다. 홀의 대표적 연구인 소비의 랜덤워크 가설은 합리적 소비자가 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소비를 결정한다는 통찰을 제공했다. 일시적인 소득 증가가 소비를 얼마나 늘릴지는 그 소득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지에 달려 있다. 일회성 재정 지원의 경기 부양 효과를 따질 때도 이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우드퍼드의 중요한 연구 가운데 하나는 ‘물가 수준의 재정 이론(FTPL)’이다. 정부의 미래 재정 흑자와 현재의 미상환 국채 사이의 균형이 흔들리면 물가 수준이 조정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재정 확대 자체가 곧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늘어난 부채를 미래 재정 흑자로 감당할 수 있는지다. 시장이 정부의 재정 운용을 신뢰해야 국채를 계속 보유하고 물가도 안정될 수 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다. 문제는 미래다. 급격한 의무지출 증가는 중장기적으로 정부가 빚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키운다. 미래대응기금을 통한 우회적인 재정 확대 논란 역시 재정 규율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FTPL의 관점에서 보면 예상 밖으로 늘어난 세수를 재량지출이나 일회성 정책에 쓰기보다 국채 상환에 활용하는 것이 미래 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한국 재정당국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