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 팔던 中업체들, 이번엔 ‘살 빼는 주사’ 암시장으로

입력 2026-10-19 09:10

펜타닐 제조 원료를 마약 조직에 공급해 온 일부 중국 화학업체들이 미승인 펩타이드 판매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체중 감량과 피부 태닝, 조직 회복 효과를 내세운 제품 수요가 늘자 기존 제조·유통망을 활용해 의약품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가 펜타닐 원료 판매 이력이 있는 업체 200곳 이상을 추적한 결과, 최소 50곳이 펩타이드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런 업체는 최근 수개월 새 늘고 있으며 가상자산 결제 기록에서 확인된 구매자들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분포했다.

알로이스 아필리포아이에 TRM 선임분석가는 중국 화학업체들이 다양한 물질을 제조할 기술과 설비를 갖추고 있어 수요가 커진 펩타이드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펜타닐 원료 거래로 국제 수사기관의 압박을 받는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고 법적 지위가 불분명한 시장에서 새 기회를 찾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짧게 연결된 물질이다. 인슐린이나 오젬픽처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의약품에도 쓰인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는 펩타이드 주사제 중에는 FDA 승인을 받지 않은 제품도 많다.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체중 감량 효과가 주목받으면서 다른 펩타이드 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미승인 제품의 효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개인 경험담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부 인플루언서와 팟캐스트 진행자, 대체의학 의사들이 사용을 권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도 펩타이드 지지자를 자처했다. 소비자들은 의료 스파나 원격의료 업체를 이용하거나 온라인에서 직접 제품을 산다. 제품에는 ‘연구용’이나 ‘인체 사용 금지’라는 표시가 붙기도 한다.

거래 규모도 급증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비공식 펩타이드 시장의 가상자산 결제액은 2025년 이전 월평균 약 20만달러에서 올해 월 1000만달러 이상으로 늘었다. 가상자산 결제 기준으로 월간 거래가 50배 넘게 커진 것이다. 일부 미국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을 이유로 중국에서 제품을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안후이런청테크놀로지는 2023년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 등에 펜타닐 원료를 공급한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됐다. 현재는 웹사이트에서 피부 태닝 효과를 내세운 멜라노탄Ⅱ와 세마글루타이드 염 형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같은 해 펜타닐 거래 관련 혐의로 기소된 안후이루이한테크놀로지도 아직 FDA 승인을 받지 않은 일라이릴리의 차세대 비만 치료제 레타트루타이드를 판매하고 있다.

밀수에는 여러 구매자의 주문을 큰 상자에 모아 일반 상품으로 위장해 반입한 뒤 미국에서 나눠 보내는 수법이 쓰인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지난해 12월 신시내티에서 이런 밀수 계획을 적발한 이후 약 400건의 시도를 차단했다. 여기에 포함된 펩타이드 소포는 약 6000개였다. 미국 전역에서는 2025년 10월부터 올해 8월 말까지 규정 위반이나 허위 표시가 확인된 의약품 배송물 2400건 이상, 제품 13만병 이상이 압류됐다.

FDA는 다른 연방기관과 협력해 미승인 제품의 판매를 조사·단속하고 있다. 의약품 안전단체 ‘안전한 의약품을 위한 파트너십’의 샤비르 임버 사프다르 사무총장은 “건강 관련 허위정보와 제도에 대한 불신이 FDA가 제공하는 안전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며 “소비자들이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규제를 받는 의약품 유통망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