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의 옛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있는 ‘국립 9·11 추모 기념관·박물관’엔 찌그러진 소방차 한 대가 서 있다. 뉴욕 소방국 제3사다리중대의 사다리차 ‘래더3’다. 2001년 9월 11일, 래더3를 타고 테러 현장에 들어간 중대원 11명은 북쪽 타워가 무너지며 순직했다. 방문객에게 래더3 이야기를 전하는 자원봉사자 바실 라이든은 순직 대원에 대해 “야근 직후 자진 출동해 화염 속으로 뛰어든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래더3를 맨 앞에 전시해 소방대원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존중과 보상 사이의 괴리미국에서 소방관은 군인과 함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직업으로 통한다. 대중문화에서도 영웅으로 그려진다. 사회의 존경심만큼 소방관에 대한 지원과 처우도 괜찮을까. 열악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소방관의 연봉 중간값은 5만9280달러(약 7900만원). 주말 근무, 야근 수당 등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실제론 미국 중간 연봉(5만980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정치인들은 계속 관련 예산을 깎으려고 한다. 뉴욕시의회 회의록엔 소방청의 소방차 차고 바닥 공사 예산을 삭감해 반발하는 내용 등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소수의 정규직과 자원봉사자로 구성되는 중소도시 소방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뉴욕 인근 중소 도시를 가다 보면 예산 부족으로 팸플릿을 들고 길거리 모금 행사를 하는 소방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다. 오죽했으면 1991년 세계적으로 흥행한 소방 영화 ‘분노의 역류’에서 예산 문제를 다뤘을까. 영화는 재난 액션과 형제 소방관의 갈등, 봉합 스토리로 관심을 끌었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 소방관을 홀대하고 소방 예산을 멋대로 감축하려는 유력 정치인을 단죄하는 것이다 처우개선 논의 본격화해야한국은 어떨까. 미국보다 처우 등 여러 측면에서 더 안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소방사 1호봉 세전 월급은 213만3000원, 위험근무수당 월 8만원에 출동 가산금 하루 최대 4만원이다. 소방관을 더 힘 빠지게 하는 건 정치권의 인식이다. 지난 13일 추미애 경기지사의 이른바 ‘소방 재정 빨대’ 발언이 대표적이다. 사흘 뒤인 16일 추 지사의 소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 부천의 한 금속사출 인쇄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관 1명이 순직하고 5명이 다치면서 국민적인 분노가 커지고 있다.
소방 예산의 실효성은 장부에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은 날, 구조 장비를 사용하지 않은 한 달은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뒤에야 인력을 뽑고 장비를 주문할 수는 없다. 평소에 쓰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작동하도록 유지해야 하는 것이 소방이다.
부천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유족은 장례식장을 찾은 추 지사에게 안전 시스템 개선과 소방 안전 투자를 요청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소방관의 희생을 기리는 것과 오늘 출동하는 소방관의 무사 귀환을 지원하는 일은 별개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희생을 기리는 만큼 희생을 줄이는데도 돈을 쓰고 있을까. 추 지사의 설화를 반면교사로 삼아 소방 시스템 개선에 관한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