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올라도 건물만 있으면 꽉 찹니다"…강남 휩쓴 '메디컬 열풍'

입력 2026-10-20 16:01


"강남역 일대는 지금도 건물만 있으면 병원 임차인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이죠."

윤화섭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상무는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 리테일 임대 시장의 '메디컬 열풍'을 이렇게 설명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 병·의원이 상가 임대 시장의 핵심 임차인으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지난해 강남 상권의 메디컬 업종 매출은 전년 대비 80% 늘었다. 명동·홍대·성수·도산공원·한남동 등 5개 주요 상권의 메디컬 매출을 모두 합친 것보다 1.5배가량 많은 규모다. 강남 상권에서 병·의원은 전체 매장 수의 27%에 불과하지만 매출의 62%를 차지했다. 매출 상위 20개 브랜드 중 95%가 메디컬 업종이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는 최근 리테일 업종 분류 체계를 바꿨다. 은행 지점, 휴대폰 대리점 등과 함께 '서비스'로 묶여 있던 병·의원을 떼어내 독립 섹터로 분류했다. 패션, 리테일, 식음료(F&B), 서비스에 이은 다섯 번째 카테고리다. 윤 상무는 "메디컬이 리테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고 말했다.
"관광 상권 신규 병원 90%는 외국인 겨냥"
메디컬 시장 성장을 이끄는 건 외국인 관광객이다. 황성필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부장은 "명동, 홍대, 강남, 도산대로 등 관광객이 몰리는 주요 상권에 출점하는 병원은 80~90% 이상 외국인 환자를 타깃으로 한다"고 했다. 외국인 객단가는 내국인보다 30~40%가량 높다. 황 부장은 "한국에 왔을 때 최대한 많은 시술을 받고 가려는 경향이 있어 한 번 결제한 금액을 소진하는 기간도 짧다"고 설명했다.

방한객의 국적이 다양해진 점도 긍정적이다. 황 부장은 “2019~2020년만 해도 중국과 일본에 크게 의존했지만 최근엔 싱가포르, 대만, 홍콩 관광객도 크게 늘었다”며 "병원들도 다양한 국적의 현장 직원을 갖추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과 홍대가 외국인 메디컬 상권으로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중심지는 여전히 강남이라고 했다. 윤 상무는 "성장률은 명동과 홍대가 높을 수 있지만 강남은 이미 매출 규모 자체가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황 부장에 따르면 강남의 메디컬 매출 규모는 다른 주요 상권을 모두 합친 것보다 1.5배 이상 크다.

강남 안에서도 '명당'이 따로 있다. 윤 상무는 "강남대로 중에서도 교보타워사거리부터 강남역사거리 사이에 들어가려는 병원이 많다"며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도 임대료 차이가 나지만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병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을 보여주듯 이 구간 입점 여부가 병원의 위상과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물리적 여건도 강남에 유리하다. 황 부장은 "피부과가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면적은 한 층 전용 100~150평(약 330~500㎡)인데, 주요 상권 중 이런 건물이 늘어선 곳은 사실상 강남대로뿐"이라며 "명동은 대로변에도 노후 건물이 많고, 홍대는 해당 구간이 짧다"고 설명했다.

임대료 상승은 업종 간 '자리 바꿈'을 불러왔다. 강남 상층부 임대료는 1년 새 20%가량 올랐다. 황 부장은 "짧은 시간에 시술을 많이 소화할 수 있는 피부과가 성형외과 시술 영역까지 흡수하면서 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게 됐다"며 "임대료를 따라가지 못하는 성형외과들이 신사역 쪽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 밀착형 상권도 새 격전지
관광객이 찾지 않는 주거·업무 밀착형 상권도 새 격전지로 떠올랐다. 쿠시먼은 최근 서울 구로에 내국인을 겨냥한 메디컬센터를 조성했다. 탈모, 문신 제거 전문 피부과와 정형외과, 대형 약국 등 기능 중심 업종으로 채웠다. 황 부장은 "문래동과 영등포시장 일대 젊은 층이 의외로 구로 쪽 네트워크 피부과를 자주 찾는다는 사실을 리서치로 확인했다"며 "강남에서 100을 내야 하는 시술을 같은 브랜드에서 80~90 수준에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상무는 "구로뿐 아니라 목동, 사당, 반포 등 생활 밀착형 지역에서 새 수요처를 발굴하고 있다"고 했다.

반대편 끝에는 도산공원 일대가 있다. 담당 의사가 정해져 있고 상담 시간이 긴 고가 '프라이빗' 병원이 몰린다. 황 부장은 "강남 대형 네트워크 피부과의 글로벌센터장 출신 원장이 최근 독립해 도산공원 앞에 문을 열었다"며 "환자를 꾸준히 만나며 VIP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고 전했다.

호텔 저층부도 병원의 새 입지로 주목받는다. 윤 상무는 "채광이 부족해 활용이 애매한 호텔 저층부를 병원으로 바꾸면 추가 임대 수익이 생기고 객실 가동률의 하방을 받쳐주는 효과도 있다"며 "병원 입장에선 럭셔리 호텔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브랜드 등급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