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며 울어본 게 언제였을까. ‘서지여사와 복만씨’의 마지막 장을 덮고,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제주도 북카페 '무화과 한 입'에서 우연히 집어 든 그림책이었다.
새아버지에게 매를 맞던 할아버지의 어린 날, 바다에 들던 할머니의 해녀 시절, 빠듯했던 살림살이까지, 부부의 생애가 차례로 펼쳐졌다.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주어였고, 할머니가 한 장, 한 장 그린 그림이 담겨 있었다.
북카페에서 일러준 곳은 모슬포의 독립서점 '어나더 페이지'였다. 책을 쓴 할머니의 손녀가 운영하는, 3대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이라고 했다.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 사라져 가는 제주어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모슬포로 향했다.
할머니의 분식집이 손녀의 책방으로
제주도 서남쪽 끝, 대정읍 모슬포. 골목 안 작은 서점의 문을 열자 ‘서지여사와 복만씨’를 쓴 현서지 할머니의 손녀, 신의주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필리핀, 몽골, 스리랑카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일한 신 대표는 귀국 후 기업 사회공헌팀을 거쳐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 책방이 들어선 자리는 할머니가 해녀 일을 그만두고 분식집을 하던 곳이다. 분식집이 문을 닫은지 15년 후, 손녀가 새 간판을 걸었다.
'어나더 페이지(Another Page)'는 '또 다른 한 장'이라는 뜻이다. 낯선 곳에서 인생의 새 장이 열렸던 것처럼, 손님들도 책 속에서 그런 순간을 만나길 바랬다.
인터뷰 도중에 동네 어르신들과 이웃들이 안부를 묻고 갔다. 누군가는 귤을 나눴고, 누군가는 오늘의 인연을 기억하라며 화산석 한 조각을 쥐여 주었다. 이곳은 책방인 동시에 동네 사랑방이었다.
여든여섯, 다시 학교에 가다
1950년대 4.3과 한국전쟁은 제주를 할퀴며 지나고 있었다. 현서지 할머니가 학교에 갈 무렵에는 폭격을 맞은 학교가 많았다. 군 막사 같은 천막 안에서 수업을 받았고, 교실은 군경이 드나드는 공간과 맞닿아 있었다. 전쟁의 흔적이 남은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어린 서지는 속이 울렁거렸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 교실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그 마음은 '못 배웠다'는 설움으로 가슴 한켠에 남았다. 해녀로 바다에 들고, 분식집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 내내 그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여든 해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할머니는 다시 학교에 갔다. '제주 어르신 그림책 학교'였다.
난생처음 그림을 그렸고, 살아온 날들을 그림과 글로 엮는 법을 배웠다.
할머니의 딸이자 신 대표의 어머니는 '딸 선생'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어르신 한 분마다 선생님 한 명이 짝을 이룬 수업에서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딸이 한 줄씩 받아 적었다. 딸에게 이 작업은 어머니의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삶을 붙잡아 두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오래 함께 머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할머니의 삶을 느껴보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받아 적은 문장은 고쳐 쓰지 않았다. 할머니 입에서 나온 제주어 그대로였다. 학교에서
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는 평생 써 온 자기 말로 첫 책 ‘서지여사와 복만씨’를
펴냈다.
할머니의 졸업식 날이 왔다. 졸업식은 평생 처음이었다. 선생님들 앞에 선 할머니는
허리를 깊이깊이 숙여 인사하다 울음을 터뜨렸다.
손녀는 그날의 눈물을 이렇게 헤아렸다.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책이 출간되자, 할머니는 그간의 설움을 위로받는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보는 저도 가슴이 뭉클했어요"
천막 교실을 떠나야 했던 소녀는, 백발이 되어서야 자기 말로 쓴 책 한 권을 품에 안았다.
”나만 잘 살면 안 된다“
어머니가 받아 적던 일을 손녀가 이어가고 있다. 신 대표는 매일 책방에 나오기 전 할머니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이제 신 대표가 귀를 기울이는 대상은 할머니만이 아니다. 동네 어르신 세 분과 몇 달간 작업해 책을 펴냈고, 지금은 제주 조천읍 북촌마을에 사시는 85세 어르신의 생애사를 쓰고 있다.
어르신들의 삶을 한 줄씩 옮겨 적으며 신 대표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어르신들이 '나만 잘 살면 안 된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세요. 남도 볕 들 날이 있어야 같이 잘 살 수 있다고요. 그런 지혜가 어르신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새겨져 있어요"
그 지혜가 살아 숨 쉬던 풍경이 '수눌음'이다. 수확 철처럼 일손이 모자랄 때 서로 서로 대가
없이 거드는 일, 돈 대신 말과 손과 마음이 오가던 제주의 품앗이다. 신 대표는 수눌음이 사라져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삶의 지혜가 새겨져 있다면 그 말이 사라질 때 함께 잃는 것은 무엇일까. 신 대표에게 제주어에 관해 몇 가지 더 물었다.
‘어나더 페이지’ 책방지기 신의주 대표에게 묻다
Q. 제주에 와서 할머니들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사’였어요.
A. 무사는 '왜'도 되고 '무슨 일이야'도 돼요. 그렇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타인에
대한 관심이에요. 그게 공동체의 바탕이 되는 거고요.
Q. 제주어를 지키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A.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가 사라지고, 문화가 사라지면 언어도 사라져요. 둘은
함께 가는 거예요.
Q. 할머니께 가장 많이 들은 제주어는요?
A. "너만 잘 살지 말라이." 욕심부리지 말고 다 같이 잘 살라는 뜻이에요. 저는
이 말을 늘 품고 살아요.
할머니가 말하고, 어머니가 받아 적고, 손녀가 책을 건넨다. 세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라져 가는 제주의 말과 삶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있었다.
누구나 편히 들어와 나눌 수 있는 문턱 낮은 서점, 모슬포 골목의 ‘어나더 페이지’는 오늘도 그렇게 다음 장을 넘긴다.
제주=홍람빈, 유지연, 강다현, 석현진, 박태준 인턴 기자 / 배경민 한경닷컴 기자 bk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