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와 해외 자회사 상장 추진이 잇따르자 ‘벌지브래킷’으로 불리는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IB)이 주목받고 있다. 해외에서 매물을 찾고 현지 투자자와 규제당국을 상대하려면 이들과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게 대기업의 설명이다.
◇해외만 보는 韓 기업들18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해외 인수(아웃바운드) 금액은 2023년 30억달러에서 지난해 86억달러로 2년 새 세 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건수도 75건에서 88건으로 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한국 시장은 ‘글로벌 IB의 무덤’으로 불렸다. 주요 그룹이 대형 해외 M&A에 몸을 사려 글로벌 IB가 낄 만한 대형 딜이 드물었다. 대기업, 사모펀드(PEF)가 주도하는 국내 거래는 한국 회계법인이 자체적으로 소화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지난해부터다. 반도체 등 국내 대기업 주력 산업이 호황을 맞자 해외에서 기술과 플랫폼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환율도 힘을 보태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1331.4원에 마감해 약 2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매물은 가격대가 만만찮고 중복 상장 금지 등 규제도 까다롭다”며 “요즘 M&A를 노리는 국내 대기업은 해외만 쳐다본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는 거래에서 글로벌 IB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건 글로벌 네트워크가 촘촘해서다. 각국 경쟁당국과 보건당국 승인 같은 규제 대응은 현지 로펌이 맡지만, 어느 로펌의 어느 변호사가 해당 분야에 강한지 알려주는 건 IB다. ◇건당 수천억원 수수료 챙겨국내 시장에서 벌지브래킷의 최대 고객은 삼성과 SK그룹이다.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9년 가까이 조 단위 해외 M&A가 없던 삼성은 지난해 독일 공조업체 플랙트그룹을 사들이고 사업지원실에 M&A팀을 꾸렸다. 올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스위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폴리펩타이드그룹을 약 2조7000억원에 인수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다.
SK는 지난 7월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으로 자본시장에서 265억달러(약 40조원)를 조달했다.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사상 최대 공모로, 대표 주관을 맡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4곳에는 ‘잭팟’이었다. 이들이 나눠 가진 수수료만 1억4000만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낸드 사업을 인수해 세운 손자회사 솔리다임도 미국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M&A 자문과 주식·채권 발행 주관 등을 합친 지난해 한국 IB 수수료시장은 7억달러(약 1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40% 이상을 외국계 IB가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빅딜이 줄을 이은 올해 벌지브래킷에 넘어간 수수료가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다은 기자
▶벌지브래킷
안내 자료에 대표 주관사 이름이 크고 굵게 실려 불룩(bulge) 튀어나와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 통상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 등 미국계 다섯 곳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