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은행이 인공지능(AI) 에이전트의 고객 계좌 접근을 차단하고 나섰다. AI가 고객을 대신해 예금 금리를 비교하고 더 높은 이자를 주는 금융상품으로 자금을 옮기면 은행의 핵심 수익 기반인 저금리 예금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외부 AI 에이전트가 고객 계좌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고객 계좌와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제3자 AI 에이전트가 계좌에 로그인하거나 디지털 뱅킹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브라이언 모이니핸 BoA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거래를 승인할 때는 반드시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대신한 금융거래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CEO 역시 “통제되지 않는 AI 에이전트가 수천 개씩 등장할 수 있다”며 계좌 접근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은행은 고객 자산 보호와 법적 책임 문제를 내세웠지만 AI 확산에 따른 예금시장 변화도 경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더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어도 계좌를 옮기는 번거로움 때문에 기존 은행에 돈을 맡겨두는 고객이 많았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금리를 실시간으로 비교하고 자동으로 자금을 이체하면 예금이 빠르게 이탈할 수 있다. 토르스텐 슬뢰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AI가 연 0.1%짜리 당좌예금에 묶인 고객 자금을 연 3.3~5%의 이자를 지급하는 금융상품으로 자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간과 BoA, 웰스파고가 보유한 무이자 예금은 1조6000억달러(약 2140조원)에 달한다. 이들 은행이 해당 예금에 연 3%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면 연간 480억달러(약 64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세 은행의 연간 순이익 합계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