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전역에서 치솟는 생활비와 연료비 급등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약탈과 방화 등 과격 폭력 사태로 번지며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심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17일(현지시간) 파리, 마르세유, 리옹, 보르도, 릴 등 프랑스 전역 1750여 곳에서 주최 측 추산 80만 명(경찰 추산 50만 명)이 참여한 고물가 규탄 집회가 열렸다. 지난달 시작된 학생 시위에 2018년 '노란 조끼' 운동 세력과 노동계까지 결집하면서,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 정국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날 시위는 초반엔 평화적으로 시작됐으나, 오후 들어시위대가 주요 상권에 진입하며 폭동으로 급변했다. 파리 중심가의 라파예트 백화점과 셀린느·디올 등 주요 명품 매장, IT·유통점들이 집단 약탈의 표적이 됐다.
방돔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 등지에서는 복면을 쓴 과격 시위대와 최루가스·물대포를 동원한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시장은 도시 시설물의 조직적 파괴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도심 방화와 정부 기관 공격은 지방 주요 도시로도 전방위 확산했다. 남서부 리모주에서는 18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국가 문화재 시청 건물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아 종탑 등이 전소됐고, 리옹에서는 관광안내소가 불에 탔다.
제2 도시 마르세유에서는 경찰서 파손과 함께 시청 건물이 한시적으로 점거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 내무부는 툴루즈, 그르노블, 앙제 등지에서도 공공기관 및 언론사를 향한 습격과 약탈 시도가 보고됐으며, 현재까지 전국에서 400여 명이 체포됐다고 집계했다.
사태가 격화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공공기물 파손과 폭력 행위에 대한 엄정 처벌 방침을 밝혔고,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극도의 폭력에 맞선 공권력 유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시위의 성격을 둘러싼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가 시위 현장에 직접 등장해 결집을 독려한 반면, 대선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극좌 세력이 정당한 사회적 요구를 볼모로 무질서를 선동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시장과 현지 언론에서는 8년 전 마크롱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노란 조끼' 운동이 고물가 체감 경기 악화와 맞물려 재점화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경제적 불만이 정치적 봉기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대선을 앞둔 프랑스 정부의 국정 동력 약화와 함께 유럽 내 고물가발 사회적 불안이 한층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