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또 강제청산 터졌나"…월가서 다시 떠오른 7월의 악몽 [빈난새의 빈틈없이마켓]

입력 2026-10-17 11:59
수정 2026-10-17 12:17
월가에서는 올 상반기까지도 미국 경제와 증시를 '테플론(Teflon)'에 빗대는 표현이 유행했습니다. 마치 음식이 눌러붙지 않는 테플론 프라이팬처럼, 인플레이션과 전쟁, 고금리·고유가까지 그 어떤 악재도 미국 경제와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고 미끄러져 흘러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철옹성 같은 인공지능(AI) 강세장을 뜻하는 말이었는데요.

이제 그 정반대가 됐습니다. 16일(미국 동부시간) 뉴욕 증시에서 S&P500은 1.1%, 다우존스는 0.3% 하락했고, 나스닥은 2.1% 급락해 6월 이후 최악의 주간(-4.5%)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번주 기술주 급락의 트리거가 된 코어위브는 금요일 12% 하락해 일주일 만에 시총이 25% 증발했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3.8% 추가 하락해 2008년 이후 최장 연속 하락이라는 기록을 썼습니다.

코어위브의 자금 조달 위험, 앤스로픽의 매출 성장세 둔화,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추격, 고금리에도 미국 경제 성장을 떠받쳐온 AI 데이터센터 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 AI에 대한 과도한 레버리지·쏠림 베팅까지. 모든 것이 AI 기술주를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AI 수요 증가를 보여주는 토큰 사용량, 엔비디아 GPU 임대가격 상승, 메모리 현물가격 상승,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차세대 D램 설계 구조는 연말이 아닌 내년에도 양산이 어렵다는 분석 등등 그 어떤 펀더멘털 지표도 해명도 먹히지 않고 미끄러집니다. 파이퍼샌들러는 나스닥이 신고가 돌파에 실패한 뒤 50일 이동평균선이 무너진데다, 상승에 참여하는 종목도 줄었다며 “지금은 저가 매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월가에서는 지난 7월 폭락장의 배경에 있던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의 'AI 헤지펀드 강제 청산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루머까지 나옵니다. AI 수요 붕괴가 아닌, 과도하게 AI에 몰렸던 레버리지 투자 포지션의 청산이 낙폭을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7월의 악몽 재소환한 VARA 청산'썰'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곳은 미국 밸류얼라인드리서치어드바이저스, 줄여서 VARA입니다. 블랙록 애널리스트 출신 벤 호스킨과 허드슨리버 트레이딩에서 알고리즘을 개발하던 데이빗 필드가 2025년 초 세운 펀드입니다.

VARA는 스스로 '세상을 바꾸는 AI'라고 부르는 흐름의 수혜주에 집중 투자해온 AI 전문 헤지펀드입니다. 오픈AI 연구원 출신 아셴브레너가 운용하는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A)'와 콘셉트가 비슷합니다. SA는 SK하이닉스 포함 AI 핵심 주식에 원금의 4배 이상 빚을 내 투자했다가 지난 7월 주가가 폭락하자 청산 위기를 맞았던 그곳이죠. 아셴브레너는 당시 보유 주식을 투매하며 버티다 결국 포트폴리오를 헐값에 미국 헤지펀드 시타델에 넘겼습니다. 이 사태는 한국 레버리지 ETF 청산과 더불어 기술주 낙폭을 더 깊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미국 투자자 커뮤니티의 의심입니다. 15일(미국 동부시간) 소셜미디어에서는 VARA가 손실을 견디지 못해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는 청산설이 돌았습니다. 실제 청산 여부나 그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보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이 이 소문에 유독 민감한 것은 포트폴리오 때문입니다. 6월 말 기준 VARA는 123개 종목, 401억달러어치 보통주와 옵션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중 평가액이 가장 큰 보유 종목(보통주) 1~3위는 블룸에너지와 네비우스(각각 약 17억달러), 코어위브(약 11억달러)였습니다. 뒤이어 인텔, 마이크론, 샌디스크, 씨게이트, 웨스턴디지털, 루멘텀 등 반도체와 메모리, 스토리지, 광통신 등 AI 하드웨어 핵심 종목이 포진했습니다. 이번주 AI 매도세의 최전선에 있던 종목들입니다.

자연히 7월의 악몽이 소환됐습니다. SA가 마진콜에 몰렸던 그때 VARA도 한 달만에 44% 손실을 냈습니다. 상반기 200%에 달했던 연초 이후 수익률은 7월 말 65%로 떨어졌습니다. 한 펀드의 자금 사정이 비슷한 주식을 보유한 다른 투자자의 손실로 번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번에도 그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이번주 투매를 키운 것으로 보입니다.

레버리지가 끼면 주가 하락은 더 큰 추가 매도를 부릅니다. 담보가치가 떨어져 증거금을 더 내야 하고, 이를 마련하려고 주식을 팔면 가격이 더 내려가는 악순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믿는 투자자도 매도에 나설 수 있습니다. 강제 매도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위험을 줄일 유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청산설의 진위와 별개로, 7월의 기억이 이번 매도세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AI 매수 포지션 걷어내는 헤지펀드들특정 펀드의 청산설보다 더 분명하게 확인되는 건 헤지펀드 전반의 매도입니다. 골드만삭스의 헤지펀드 트레이딩 데스크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은 8~14일 연속 반도체·데이터센터·클라우드·전력 인프라 등 AI 핵심주 100여 개로 구성된 글로벌 AI 바스켓 주식을 순매도했습니다. 헤지펀드들은 작년 초부터 쌓아온 순매수분을 이번에 모두 되돌렸고, 순매도 규모는 최근 1년 중 두 번째로 컸습니다. AI 하드웨어, 그중에서도 메모리 쏠림이 심각한 한국 코스피가 최근 유독 낙폭이 컸던 이유입니다.

중요한 것은 매도의 성격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새로운 공매도보다 기존 매수 포지션의 청산이 압도적이었다고 했습니다. AI 주가의 하락에 새로 베팅하기보다, 그동안 AI 상승에 걸었던 베팅을 걷어냈다는 뜻입니다. 빠져나온 돈은 헬스케어와 필수소비재 같은 '방어주'로 이동했습니다.

이들이 위험을 줄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AI 투심 악화뿐 아니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불확실성,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란 전쟁과 중동 긴장 고조 등 리스크 선호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산재합니다.

버티컬 리서치 어드바이저의 킵 헤리어지는 "최근의 기술주 매도는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 재개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매도 때문이라고 본다"고 했습니다. 간밤 이란 국영방송 IRIB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송유관이 다시 공격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동서 송유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해 사우디 원유를 홍해로 실어나르는 핵심 경로입니다.

이 보도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가 급등, 브렌트유는 다시 110달러에 육박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Fed(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경계심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금리 상승은 이번주 코어위브와 네오클라우드를 직격하고, AI 주식 전반으로 우려를 확산시킨 AI 자금 조달 위축 우려의 핵심 배경입니다.

이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높아지면 결국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반도체와 전력, 하드웨어 인프라에 대한 주문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리치 프리보로츠키 골드만삭스 총괄은 기술에 대한 낙관을 유지한다면서도 “높은 자본비용 때문에 수요가 실제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며 “최악의 경우 반도체 공급망이 2027~2028년 ‘주문 공백’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도이체방크의 짐 리드 전략가는 AI 우려로 시장이 흔들리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설비투자가 부채로 충당되는 비중이 커질수록 신용시장의 신호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코어위브와 오라클처럼 자기자본 대비 차입 부담이 큰 클라우드 업체의 회사채 수익률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하고 있는 데 대한 경고입니다. "펀더멘털 좋지만, AI 투자 황금기는 끝"월가의 진단은 대체로 '펀더멘털 붕괴는 아니지만 호시절은 끝나간다'로 압축됩니다. 바클레이스의 에마뉘엘 카우 전략가는 최근 약세의 상당 부분을 펀더멘털 악화가 아닌 포지셔닝 문제로 해석했습니다. ASML과 TSMC가 제시한 강한 수요 전망 등을 보면 AI 산업의 기초체력이 무너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날 아마존웹서비스(AWS) CFO는 "AWS의 AI 서버 투자 회수기간은 3년 미만이며, 상당한 투자 수익과 생산성 개선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AI 수요는 실재하고 AI 지출은 지속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올 상반기까지처럼 'AI 관련주면 다 오르는' 시기는 이미 지난 것처럼 보입니다. 카우는 AI 투자자들이 밸류에이션과 자금조달, 경쟁, 매출 가시성을 깐깐하게 따지는 성숙 단계에 진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AI 안에서도 검증된 사업모델과 탄탄한 현금흐름을 갖춘 기업을 훨씬 까다롭게 골라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시장에는 여전히 실적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다음주 메타 실적은 그 첫 시험대입니다. BNY웰스의 케빈 셰이 선임 주식 전략가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이익이 자본지출보다 빠르게 늘어날 수 있는지를 핵심 관전 포인트로 꼽았습니다.

시타델증권의 스캇 럽너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4분기 미국 증시를 여전히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앞으로 몇 주가 펀더멘털을 시험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나온 이 리포트는 이번주 미국 증시에서도 매도세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11~12일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입니다.

이에 따르면 6월 말부터 12일까지 메모리 업종의 향후 12개월 주당순이익(EPS) 전망은 25% 높아졌지만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34% 낮아졌습니다. AI 인프라 업종도 EPS 전망은 25% 상승한 반면 PER은 22% 하락했습니다. 이익 전망이 꺾이기 전에 주가에 반영된 기대와 평가가 먼저 낮아졌다는 뜻입니다. 시장이 자신감을 회복하려면 그러나 관건은 수급입니다. 기술주가 폭락을 반복하면서 저가 매수에 대한 투자자의 자신감은 약해진 상태입니다. JP모건은 "모멘텀을 추종하는 '패스트머니'와 개인투자자도 저가 매수 자신감이 없고, 장기투자자들은 2028~2029년 사이클 종료를 걱정해 매수에 더 신중해졌다"며 극단적인 저평가에도 코스피에 자금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미국 증시는 자사주 매입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럽너에 따르면 현재 S&P500 시가총액의 24%에 불과한 자사주 매입 비중은 월말 55%, 11월 9일 85%로 높아집니다.

단, 럽너도 지수 전체의 상승이 아닌 개별 종목을 선별하는 전략을 강조합니다. 업종 간 순환매가 시장 전반의 위험 축소로 바뀔 위험도 짚었습니다. 최근 리스크 축소와 '금리 정점' 인식이 채권 매수 수요로 흘러가면서 금리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청산 공포가 낙폭을 키운 것이라면 매도가 잦아드는 대로 단기 반등은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더 큰 하락의 전조일지, 진정한 반등의 시작일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 잦아들고, 미국 중간선거 불확실성이 걷히며, 실적 시즌을 통해 '늘어난 AI 수요가 충분한 이익과 현금으로 돌아온다'는 증거를 확인하면서 시장이 매수할 자신감을 되찾는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