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역사를 바꾼 세금들

입력 2026-10-17 07:00
“세상에 좋은 세금은 없다”고 한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세금은 환영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뜻의 세금이라도 납세자로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금과 함께한다. 매일 부가가치세가 붙은 밥과 커피를 즐긴다. 어떤 이들은 담배소비세와 주세를 물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매월 원천징수로 미리 떼낸 세금을 제외한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증권거래세를 내며 자산을 굴린다. 매년 재산세는 물론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국민이 늘고, 상속·증여세를 고민하는 국민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모든 국민의 납세의무를 규정(제38조)하고,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제59조)해 ‘조세법률주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정부가 올바르게 세금을 거두고, 그 세금을 낭비 없이 필요한 곳에 쓸 것이라고 믿으며 성실하게 납부한다.


그러나 최근엔 ‘조세저항’으로 불릴 수준의 반발이 일었다. 초고가·비거주 1주택자 대상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정부 세제 개편안에 민심이 요동쳤다. 지난 8월 종부세법 개정안과 소득세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법 의견이 각각 9370건, 4082건 제출됐다. ‘세금을 못 내면 서울을 떠나라는 거냐’는 격앙된 반응이 상당수였다. 한국은 매년 100명 중 12명이 이사할 정도로 이동률이 높다는 현실을 정부가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증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운명을 바꿨다. 근대 영국의 번영,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이끈 것은 세금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의 변방에 머물던 영국은 대항해시대를 맞아 해적선의 약탈을 허락하는 대신 노획품의 5분의 1을 국가에 바치도록 했고, 막대한 ‘해적세’는 영국을 근대 세계사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영국과의 ‘백년전쟁’ 비용을 치르느라 빚더미에 앉은 프랑스 왕실은 면세 특권층인 귀족, 수도승 대신 평민에게만 ‘농민세’를 거두다가 무너졌다.

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인 ‘보스턴 차(茶) 사건’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의석을 주지 않으면서 차를 팔아 세금만 걷겠다는 영국의 심보를 북아메리카 차 밀수업자들이 읽어낸 것이다. 밀수업자들은 “대표가 없으니 과세도 없다”며 납세를 거부했고, 보스턴에서 차를 실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배에 난입해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우리나라에서도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이 박정희 정권의 종말과 무관치 않다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종부세가 처음 부과된 것은 2005년. 지금까지 여섯 정부를 거치며 진보 정부는 조이고, 보수 정부는 풀면서 납세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세금’이라는 불안을 남겼다. 같은 집에 대한 보유세인데, 지방세인 재산세에 국세인 종부세가 더해져 세계 주요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이중과세’되고 있다는 논란도 여전하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는 오는 11월 조세소위원회를 본격 가동한다. 정부는 ‘합리적’ 제안은 수용할 것이라며 최대한 정부안을 지킬 생각이다. 여당은 선거 악영향을 우려하며 수정을 예고했고, 야당은 겉으로는 고쳐야 한다면서도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됐을 때 얻을 반사이익을 계산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좋은 세금은 네 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고 썼다. ‘공정(equality)해야 하고, 명확(certainty)해야 한다. 편리(convenience)하게 납부할 수 있어야 하며, 징수비용이 저렴(economy)해야 한다’는 것이다. 250년 전 스미스가 제시한 좋은 세금의 네 가지 기준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문제는 현실에서 정치 논리 탓에 그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부세 개편안이 나올 때마다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적 공방만 오갈 뿐 생산적 논의로 발전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종부세가 높아서 문제라고 하고, 누군가는 낮아서 문제라고 하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모두가 불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종부세가 좋은 세금의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개편이 단순히 세 부담을 높이는 게 아니라 판을 새로 짜려고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종부세는 어떤 방향으로든 한국의 미래를 바꿀 세금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개편이 또 한 번의 전(前) 정권 정책 뒤집기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