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홍대 등을 거닐다 보면 길게 늘어선 줄을 마주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컴백을 기념하는 팝업스토어부터 글로벌 캐릭터 브랜드의 전시 체험 공간까지, 도심 곳곳이 연일 인파로 북적인다. K팝 대형 콘서트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초고속 매진을 기록하고, 각종 문화 산업의 지표는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모양새다.
이러한 대중이 체감하는 열기 속에서, 정작 산업 현장을 지탱하는 기업들이 느끼는 온도는 사뭇 다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콘텐츠산업 동향 및 경영체감도(CBI)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K컬처의 전성기를 이끄는 핵심 주역들은 오히려 수익성 악화와 비용 압박 속에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 '월 355개' 쏟아지는 팝업스토어…양적 팽창에 가려진 수익성의 그늘가장 극단적인 명암이 교차하는 곳은 캐릭터 및 오프라인 공간 비즈니스다. 올해 상반기 전국에서 열린 팝업스토어는 무려 213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9%나 급증했다. 월평균 개관 건수 역시 2년 만에 약 3배로 불어나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이벤트 장으로 변모했다. 성수동에 국한되던 상권은 용산, 송파, 마포, 중구 등 서울 전역으로 빠르게 확장됐다.
표면적인 지표만 보면 메가 히트 수준이지만, 개별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영 성적표는 이와 괴리가 크다. 실제로 캐릭터산업의 매출 부문 체감 지수는 기준선인 100을 크게 밑도는 93.1에 그치며 전 산업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원인은 치솟는 고정비와 구조적인 한계에 있다. 팝업스토어가 단순한 상품 판매 공간을 넘어 몰입형 경험 공간으로 진화하면서 공간 연출비, 인테리어 비용, 상시 운영 인력 유지비 등 수반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단기적인 화제성과 모객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언정,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이것이 곧바로 알짜배기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다. 양적으로 팽창한 시장의 그늘 아래서 중소 IP들과 기획사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이유다. ◆ 역대급 음반·공연 매출에도…'대형사 쏠림'에 얼어붙은 중소 체감 경기
공연계와 음악산업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터차트와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등의 집계에 따르면, 상반기 K팝 음반 판매량과 대중음악 콘서트 시장 매출은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거대한 유동성을 증명했다.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은 월드투어의 성공과 대규모 MD 판매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특히 하이브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매출 1조 4500억원, 영업이익 1709억원을 동시에 넘어서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 기록의 이면에는 지독한 '쏠림 현상'이 드러났다. 상반기 대중음악 콘서트 시장의 전체 매출 가운데 상위 10개 공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26.9%에 달했고, 1만석 이상의 초대형 공연장이 전체 매출의 55.2%를 독식했다.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이 소수의 메이저 아티스트와 대형 공연장으로만 집중되는 구조다.
이로 인해 중소 기획사와 영세한 공연 기획 사업체들이 느끼는 수출, 고용, 자금 사정 등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음악산업 전체의 종합 체감 지수가 100을 상회하며 겉으로는 순항하는 것처럼 보여도, 앞선 분기의 높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괴리를 겪는 탓에 현장의 온도는 냉랭하다. 대형 IP의 컴백 주기에 따라 실적의 극단적인 편차가 발생하면서, 허리가 튼튼해야 할 중소 생태계의 신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지표와 씁쓸한 체감 경기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콘텐츠 업계는 무리한 양적 확장 대신 '내실 다지기'와 '수익성 중심의 체질 개선'으로 칼을 빼 들었다.
단순히 오프라인 이벤트를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IP의 다각화와 글로벌 유통망 다변화가 생존의 화두로 떠올랐다. 웹툰 플랫폼들은 인기 IP의 게임화나 해외 현지 맞춤형 플랫폼 확장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방송·영상 및 음원 제작사들 역시 특정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OTT와의 동시 방영, 팝업과 굿즈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패키지 전략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들은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오프라인 열기'나 '일회성 대박'에 취하기보다, 산업 전반의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중소 생태계까지 온기가 고르게 퍼질 수 있는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 재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화려한 축제의 함성 뒤에서 K콘텐츠가 마주한 진정한 시험대가 시작됐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