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가 공장 검사·물류 기술의 내재화와 가상 시운전 등 제조 기술의 현재를 공개하고, 2032년 이후 미래 신공장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하는 '자율운영공장' 비전을 제시했다.
현대차·기아는 19~21일 경기 의왕시 현대차그룹 의왕연구소에서 열리는 스마트 팩토리 기술 전시회 '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6'에 앞서 16일 미디어 초청행사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올해 7회째인 이 행사의 본행사에서는 제조 신기술 200여 건이 전시된다. 이날 공개된 기술들은 외부 의존을 줄이는 내재화와 실제 설비를 깔기 전에 가상공간에서 먼저 검증하는 가상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외국산 의존하던 외관검사, 직접 개발한다
내재화의 대표 사례는 비전(영상 인식) 기술이다. 현대차·기아는 그동안 완성차 외관검사에서 외국산 시스템 의존도가 높았다. 회사는 비전 기술 내재화 전담 조직을 꾸리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자체 기술로 갖춘 '터널형 완성차 외관검사' 시스템을 내놨다. 불량 차량 유출을 막는 동시에 양산 설비 유지관리 비용과 신차 투자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당 시스템은 차 한 대에 이미지 약 5000장을 찍어 1㎜ 크기의 결함까지 잡아낸다. 시연을 맡은 임성수 책임이 화면을 띄우자 차량 이미지 위에 결함 부위가 빨갛게 표시됐다. 해당 부위를 누르면 결함의 위치와 유형(덴트·스크래치 등), 크기와 함께 도면 정보가 나타났다. 결함 데이터가 부족해 검사 모델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에는 이미지 증강과 라벨링 자동화 기술로 대응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기아 화성 EVO West 공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엔비디아와 '물리 법칙 담은' 가상 시운전
현대차 제조솔루션본부는 엔비디아와 협업해 '물리 인공지능(AI) 기반 가상 시운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 설비 및 로봇 시뮬레이션은 그래픽 위주여서 중력·충돌·마찰 같은 물리 현상을 반영하지 못해 장시간의 실물 시운전이 필요했다. 새 기술은 실제 물리 현상을 반영해 가상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고, 로봇 작업 프로그램과 설비 제어(PLC) 프로그램을 통합 시뮬레이션해 서로 미치는 영향을 미리 확인한다.
권희종 현대차 제조솔루션본부 책임은 "신차 투입 준비 과정을 단축하기 위해 현장의 상황을 가상으로 동일하게 재현하고 이를 예측하는 기술인 Sim2Real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 티칭 자동화도 같은 맥락이다. 차체 공정에서 로봇이 용접하는 용접점은 1700개가 넘지만, 로봇과 라인을 설치할 때 각 용접점까지의 이동 경로는 지금도 현장 엔지니어가 수동으로 입력한다. 새 기술은 AI가 경로를 자동으로 만들고, 3D 비전 센서로 가상과 실제의 오차를 실시간 보정해 로봇 끝단을 1㎜ 이내 오차로 용접점에 보낸다. 시연에서는 차체를 일부러 틀어 놓은 상태에서도 사용자 개입 없이 경로 생성과 보정이 이뤄졌다. 2027년 6월 개발 완료가 목표다. 울산 EV공장서 시범운영 중인 '폴라리스'제조 특화 AI 에이전트 플랫폼 '폴라리스(POLARIS)'는 지난 9월 울산 EV공장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생산관리시스템(MES)·품질관리시스템(IQIS) 등에 흩어진 가동·품질·보전 정보를 통합 분석하고, 사내 문서와 생산 노하우를 찾아 답한다.
임용택 제조소프트웨어개발실 책임이 음성으로 "어제 '차·도·의' 주요 결함에 대해 알려줘"라고 하자, 폴라리스는 현장 약어 '차도의'를 차체·도장·의장 공정으로 알아듣고 하위 에이전트들에 분석을 나눠 맡긴 뒤 결과를 시각화해 띄우고 음성으로 소개했다. 분석 결과는 MS 오피스 문서로 만들어 팀즈나 이메일로 보내거나 정기 리포트로 자동 발송할 수 있다. 이날 시연은 가상(더미) 데이터로 진행됐고, 정리된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잠시 후 메일함에 자료가 도착한 상황까지 이어졌다. 물류 로봇 표준화로 제작비 30% 절감 기대…충전은 12분
회사는 물류 로봇의 하드웨어 설계와 주행 소프트웨어도 내재화했다. 표준 사양을 바탕으로 한 '물류 로봇 표준화 플랫폼'으로, 제작 비용을 약 30% 줄일 수 있다. 어느 업체가 조립하든 같은 성능과 품질을 내도록 한 것이다. LTO(리튬티타네이트산화물) 배터리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조합해 기존 2시간 걸리던 충전 시간을 최대 12분 수준으로 줄였다. 기아 화성 EVO West 공장과 울산공장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차세대 관제 시스템 ‘HACS 2.0’도 내재화 개발 중이다. 로봇의 도착 예상 시간을 계산해 경로상 지점을 미리 선점하는 방식으로 로봇끼리 길이 엉켜 멈추는 교착을 막는다.
사람 손을 본뜬 핸드 그리퍼로 모양이 제각각인 부품을 다루는 기술도 공개됐다. 부품을 알아보는 비전 모델과 쥔 상태를 감지하는 촉각 모델을 개발해 국내외 그리퍼 제품에 적용했다. 시연에서 로봇은 운송 중 변형을 막으려고 서스펜션 스프링에 걸어 둔 와이어 고리를 떼어냈다. 지금은 작업자가 손으로 하는 일이다. 유지훈 책임은 "아직 시작 단계여서 모방학습이나 강화학습 등 적용해야 할 것들이 많다"며 "내년, 내후년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32년 이후 신공장에 휴머노이드
이 기술들이 향하는 목표는 최영태 현대차·기아 제조솔루션본부 E-FOREST 센터장(상무)이 제시했다. 최 상무는 "우리의 과제는 자동화를 확대하는 것을 넘어 공장이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며 진화하는 자율 운영공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싱가포르 현대차그룹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미래 제조 기술을 먼저 검증하는 '마더 플랜트'로 삼아 2030년 이곳에서 가상 기반 자율화 제조시스템을 고도화한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와 울산 EV공장에 이어 기존 글로벌 공장에도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 기반 체계와 핵심 제조 앱을 차례로 확대하고, 2032년 이후 미래 신공장에서는 휴머노이드와 풀 스케일 자율화 기술을 본격 적용할 계획이다.
최 상무는 "자동화의 목적은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안전하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제조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무인공장과는 선을 그었다.
의왕=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