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튀르키예인"…한국인 '국적 세탁' 나선 이유

입력 2026-10-15 21:00

30대 직장인 A씨는 올 들어 온라인 국적을 세 차례 바꿨다. 한국에 살지만 유튜브 프리미엄과 넷플릭스 등 구독 서비스에 가입할 땐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인도인, 아르헨티나인, 튀르키예인이 됐다. 국가별로 월 수천~수만원까지 벌어지는 구독료 차이를 이용해 고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각 회사가 최근 해외 우회 가입을 차단하자 A씨의 대응은 갈수록 치밀해졌다. 한국 카드로는 결제가 막혀 현지 앱스토어 계정을 개설하거나 그 나라 전용 기프트카드로 구독료를 충전하는 방법까지 알아봤다. 접속 국가뿐 아니라 돈을 내는 방식까지 현지인처럼 바꾸려는 것이다.

이 같은 ‘디지털 이민’ 현상의 가장 큰 요인은 갈수록 많아지는 구독 플랫폼과 서비스의 국가별 가격 격차다. 15일 기자가 한국, 인도, 필리핀, 튀르키예, 아르헨티나의 주요 디지털 구독료를 비교한 결과 국가별 가격 차이가 최대 7배를 넘었다.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는 한국에서 월 1만4900원인데 인도에선 2100원(149루피)에 불과하다. 1년이면 약 15만3600원 차이가 난다. 필리핀에선 4100원(189페소), 튀르키예에선 3300원(119.99리라) 수준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생성형 인공지능(AI) 구독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월 1만3500원인 넷플릭스 스탠다드 요금은 인도에선 7100원(499루피)으로 절반이다. 챗GPT의 고급 유료 요금제 ‘챗GPT Pro 200’은 한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월 29만9000원, 필리핀 앱스토어에선 21만4400원(9990페소)이다.

거주 국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품 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디지털 이민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구글에 따르면 한국에선 벨라루스, 아이슬란드, 슬로베니아, 베네수엘라와 함께 유튜브 프리미엄 가족 요금제가 제공되지 않는다. 반면 인도와 필리핀에서는 같은 가구에 사는 가족 최대 6명이 하나의 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인은 가족이어도 각자 가입해야 해 지출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플랫폼은 이런 현상을 기회로 활용하기도 한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에 가입하면 넷플릭스 광고형 스탠다드를 직접 가입할 때보다 월 2100원 저렴한 49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배달의민족도 유튜브 프리미엄과 무료 배달 혜택을 묶어 월 1만3990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통신사도 유튜브와 넷플릭스 요금제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구독료를 깎아주는 대신 이용자를 자사 플랫폼에 묶어두는 전략이다.

안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