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金 3700만원어치 카드 긁더니…"안 갚을래요" 황당

입력 2026-10-15 17:52
수정 2026-10-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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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전용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 연체액이 4년간 4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빚을 갚지 못해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은 2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15일 한국주택금융공사가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 연체액은 6713억원으로 집계됐다. 1482억원이던 2021년 말 이후 4년7개월 만에 4.5배로 증가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말 연체액은 8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금자리론은 연 소득 7000만원 이하인 무주택·1주택 가구가 6억원 이하 주택을 구입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정책대출이다. 디딤돌대출은 연 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에게만 저금리로 최대 2억원을 빌려준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이 대출을 갚지 못해 담보로 설정한 집을 경매에 넘긴 사례는 862건으로 2021년 1~8월보다 169%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금자리론 원리금을 갚지 못해 채무를 감면받은 사례도 3365건에서 1만3700건으로 4배 넘게 늘어났다.

연체가 채무조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금융권 전반에서 급증하는 추세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주택대출과 신용대출 등을 갚지 못해 신용회복위 채무조정 창구를 찾은 사람은 14만9576명이다. 연말까지 22만 명을 넘어 카드사태 후폭풍이 컸던 2004년(28만7000명) 후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의원은 “성실 상환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공정한 신용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여행·명품 긁고…빚 탕감 노리는 '악성 채무자'
신용회복위 '채무조정 신청' 22년 만에 최대신용카드사 채권 회수 부서 직원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40대 남성 고객이 가족 명의 카드로 순금 3700만원어치를 구매한 뒤 곧바로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 절차를 신청한 것이다. 카드사는 구매한 금을 처분해 일부라도 상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안 갚을 테니 채무조정 절차와 법대로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채무조정 신청이 잘 받아들여지자 빚을 안 갚는 채무자가 늘어 갈수록 추심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 신용회복위 채무조정 신청 급증빚을 제때 갚지 않고 신용회복위 채무조정을 악용하는 채무자가 급증하고 있다. 법원에 신청하는 개인회생과 파산보다 절차가 간편하고 인용률이 높아서다. 정부가 채무자 빚을 탕감하거나 연체 기록을 일괄 삭제해주는 ‘신용사면’을 반복한 영향도 있다.

15일 신용회복위가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 말까지 채무조정을 신청한 14만9576명 중 90일 이상 연체한 채무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워크아웃이 8만8163명으로 가장 많았다. 연체 기간이 30일 이하인 신속채무조정이 3만9938명, 사전채무조정(연체 기간 31~89일)이 2만147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신용회복위 채무조정은 빚을 갚기 어려운 차주의 재기를 돕기 위해 채무 규모를 줄여주는 제도다. 금융회사와 채무자 간 합의를 유도해 원금 상환 유예, 이자율 감면 등을 지원한다.

법원 개인회생보다 승인율이 높은 게 채무조정 증가 요인이 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개인워크아웃 신청자 중 85.8%가 조정 승인을 받았다. 신속채무조정과 사전채무조정 인용률은 각각 91.3%, 93.8%로 더 높았다. 지난해 법원에 신청한 개인회생 인용률(84.8%)을 웃돌았다.

신용회복위에 채무조정을 신청해 인가를 받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도 2개월가량으로 5개월 이상 소요되는 개인회생보다 짧다. 변호사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절차가 간편한 점 역시 채무조정으로 몰리는 요인이다.

금융회사는 반복되는 정부 신용사면이 채무조정을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신용사면은 개인, 개인사업자가 연체액을 상환하면 한국신용정보원이 관리하는 데이터에서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조치다. 신용사면을 받으면 연체 기록이 사라져 연체 이력자의 신용점수가 올라간다. 1999년 김대중 정부를 시작으로 2013년 박근혜 정부, 2021년 문재인 정부, 2024년 윤석열 정부에 이어 지난해 이재명 정부도 신용사면을 단행했다. 5000만원 이하 연체 빚을 상환한 차주가 대상이었다. 지난 8월엔 코로나19 당시 대출을 받고 3년 넘게 갚지 못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장기 연체 채무를 탕감해줬다. ◇ “상환 의지 있는 차주만 구제해야”카드사는 빚 탕감 정책에 채권 회수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연체 기간이 30일 이하인 차주가 신청할 수 있는 신속채무조정은 악성 채무자의 추심 회피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입을 모았다.

50대 여성 B씨는 올해 초 한두 달 동안 해외여행과 각종 명품 쇼핑 등으로 2500만원 넘는 금액을 카드로 결제한 뒤 연체가 발생하자마자 신속채무조정을 신청했다. 30대 여성 C씨도 한 달 만에 온라인 쇼핑으로 200건 넘게 물건을 구매한 뒤 채무 독촉 연락을 피하기 위해 신속채무조정을 택했다.

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 직원은 “채무조정과 개인회생 절차의 허점을 잘 아는 공무원, 법원 직원 등이 신용대출을 최대한 받은 뒤 은퇴 직후 신용회복위 채무조정이나 개인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신용사면 정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사면을 받은 수혜자(292만8000명) 가운데 올해 상반기 다시 연체가 발생한 비율은 22.2%에 달했다. 빚을 탕감받은 뒤 또 빚을 내 다시 연체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성실 상환자의 박탈감을 유발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차주의 재기를 도울 필요는 있지만 무작정 빚을 탕감하면 신용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채무조정 제도를 악용하는 악성 채무자를 걸러내고 상환 의지가 있는 차주를 선별 지원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장현주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