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탄소배출 허용 총량이 줄어든 제4차 계획기간이 시작되면서 발전사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배출권을 사들인 영향이다. 일부 기업은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탄소 비용, 1년 새 3배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업이 올해 온실가스 배출권(KAU26)의 t당 가격은 지난 8일 3만450원을 기록했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1만5000원대였지만, 가격이 점차 상승하더니 지난달부터 3만원 안팎에서 유지되고 있다. 지난 8월 거래가 종료된 KAU25도 3만원 선에 육박한 2만9450원에 장을 마쳤다. 1년 전(8800원)보다 234.7% 뛰었다. 기업이 탄소 배출에 쓰는 비용이 1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늘었다는 뜻이다.
2015년 시작한 배출권거래제는 기업이 보유한 배출권만큼만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모자란 배출권이나 남는 배출권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 산업계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배출권 가격이 비싸지면 기업으로선 온실가스 감축 기술에 투자하는 게 더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KAU25와 KAU26은 각각 지난해와 올해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배출권을 뜻한다.
문제는 탄소배출권 가격이 짧은 기간 안에 급등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연도별 정산 시점이 맞물렸기 때문이 아니다. 올해부터 탄소 배출허용총량이 확 줄어든 영향이다.
정부는 제4차 계획 기간(2026~2030년)의 배출허용총량을 이전 기간보다 17% 감소한 25억3730만t으로 책정했다. 구조적으로 공급이 줄다 보니 선제적으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려는 기업의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철강 등 기업에 직격탄탄소배출권 가격을 밀어올리는 공급 감축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2030년 탄소 배출허용총량을 4억5600만t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45년까지 2018년 탄소 순배출량의 84~90% 이상을 감축하는 내용의 탄소중립기본법도 지난 8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등하면 기업뿐 아니라 은행, 기관투자자도 배출권 거래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배출권 발행 한도 감축 기조에 따라 최근 글로벌 배출권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럽 탄소배출권은 지난 2월 t당 69유로까지 하락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86유로까지 치솟았다.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 등 이를 추종하는 상품도 최근 6개월간 수익률이 16.99%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제 유가 흐름을 따르는 ‘KODEX WTI원유선물(H)’보다도 수익률(15.78%)이 높다. 글로벌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동조화 현상에 따라 국내 배출권 가격도 더욱 상승한다.
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포스코, 현대제철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회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탄소중립이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재무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됐다”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