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이 현지 취업에 필요한 실무연수 허가를 받으려면 처음에 약 9400만원, 이공계 전공자는 연장 비용까지 최대 1억3400만원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규정안이 나왔다. 법적으로는 대학이 수수료를 내도록 했지만 학교가 거액을 대신 부담할 가능성이 낮아 미국 취업을 준비하는 유학생과 가정에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7일(현지시간) 학생비자(F-1) 소지자의 선택적 실무연수(OPT)에 새로운 수수료를 부과하는 규정안을 발표했다.
규정안에 따르면 학생이 처음 OPT에 참여할 때 학교가 7만달러를 내야 한다. 같은 학생을 추가로 OPT에 추천하면 3만달러가 더 부과된다. 한화로 각각 약 9380만원과 4020만원이다.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전공자가 졸업 후 일반 OPT 1년과 추가 연장 2년을 모두 이용하면 최초 수수료 7만달러와 연장 수수료 3만달러가 차례로 발생한다. 총 10만달러로 같은 환율을 적용하면 약 1억3400만원에 달한다.
OPT는 미국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을 졸업한 외국인이 별도의 취업비자를 받지 않고도 기존 F-1 비자로 전공 관련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일반 전공자는 졸업 후 1년간 일할 수 있고 STEM 전공자는 2년을 추가해 최대 3년간 체류하며 근무할 수 있다.
명목상 수수료 납부 주체는 유학생이 아니라 학교다. 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의 인증을 받은 대학이 학생을 OPT 대상자로 추천하기 전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 비용을 내지 않으면 학교가 학생을 추천할 수 없고, 학생도 이민국(USCIS)에 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학이 학생 1명당 최대 10만달러를 자체 부담할지는 불투명하다. 규정안도 대학이 비용을 전부 부담하거나 일부를 학생 등에게 전가하는 여러 상황을 가정해 경제적 영향을 분석했다. 대학이 비용을 내지 않거나 학생과 기업에 부담을 넘기면 사실상 유학생의 미국 취업 문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DHS는 OPT가 미국 노동시장으로 들어오는 우회 통로나 저임금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보조금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OPT 관련 사기와 제도 남용을 줄이고 미국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높은 수수료가 대학의 선별을 강화할 것이라는 논리도 폈다. 대학이 학생을 OPT 대상자로 추천할 때 프로그램 참여에 드는 비용과 해당 학생이 학교에 가져올 가치를 함께 따지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과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의 등록금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고 기술기업을 비롯한 산업계는 OPT를 통해 STEM 분야 인재를 채용해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미국에 처음 입국한 신규 외국인 유학생은 전년보다 17% 감소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올해 유학생 수가 30∼40% 줄었다는 보고도 나왔다.
국제교육자협회 NAFSA의 판타 아우 최고경영자는 외국인 유학생을 몰아내면 미국의 혁신과 경제성장, 인력 개발, 글로벌 리더십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교육협의회도 졸업 후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외국인 학생들이 미국 대학을 선택하는 주요 이유라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USCIS 수석 고문을 지낸 더그 랜드는 이번 수수료가 법원에서 무효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대학에서 교육한 유학생이 졸업 후 능력을 발휘하려 할 때 터무니없는 수수료로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번 방안은 확정된 제도가 아니라 규정안이다. 현재 OPT와 STEM OPT 신청자에게 7만달러나 3만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DHS가 의견 수렴과 검토를 거쳐 최종 규정을 확정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대학과 기업 관련 단체가 소송에 나서면 시행이 미뤄지거나 규정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