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가는 브랜드는 서두르지 않는다, 신간 <슬로 브랜딩>

입력 2026-10-08 17:32
수정 2026-10-08 17:34


할인할 때만 반짝 팔리고 사라지는 제품의 문제는 뭘까. 신간 <슬로 브랜딩>은 고객의 마음에 자리잡는 브랜딩을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일본에서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30년 넘게 활동한 브랜드 전략 전문가 에가미 다카오다. 저자는 15초짜리 숏폼 컨텐츠의 시대에 지금이야말로 '슬로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느려도 최고를 만들고 최고를 제공하기 위해 본질에 집중하는 것. 책에서 제시된 브랜드의 정의는 그런 방식으로 소비자의 마음에 축적된 기억이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가 보는 브랜딩은 존재 이유를 재정의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테슬라를 전기차 제조사로만 보지 않는다. 제조 방식과 사업 모델, 탄소배출권 사업은 하나의 본질을 가리킨다고 본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것'이다.

책은 본질에 닿을 수 있다면 비효율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세계 각국 정상의 만찬장에 와인을 올리는 코코 팜 와이너리를 대표적인 예로 든다. 이 곳에선 지적장애인들이 누가 봐도 손이 더 많이 가는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고생하며 축적한 포도 재배와 양조 기술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배경엔 지적장애인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발휘하게 하면서도 궁극의 맛을 지닌 와인을 만들겠다는 브랜드 철학이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가령 토양을 가꾸는 일은 당장 수익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와인을 만드는 입장에선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에콰도르의 다나베 농장은 제초제와 화학비료에 의존하지 않고 숲과 토양을 가꿔 바나나를 생산한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장인을 더 대우하며 공장을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으로 만들었다. 인간의 존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어서다. 리츠칼튼 호텔은 애착 인형을 두고 간 아이에게 인형의 여름 휴가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저자는 이같은 브랜딩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객이 브랜드의 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쌓인 기억은 쉽게 복제할 수 없다. 속도가 경쟁력이 된 시대에 저자는 오히려 서두르지 말라고 권하는 이유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