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익의 식식원픽]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사용하며 널리 알려진 이 말은 한 시대나 분야에서 지배적이던 사고의 틀(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현상을 의미한다. 1980년대 이후 국내에 고깃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전국에 수십만 개의 고깃집들이 생겨나고 없어지길 반복하는 전쟁 같은 판을 완벽히 뒤집어버린 식당이 있었다. ‘품종’ 하나로 차원이 다른 맛을 선보이며 많은 사람에게 쇼크를 선사한 집. 10년 넘게 손님들을 줄 세우고 있는 신당동의 금돼지식당이다.
금돼지식당의 대표인 박수경·신재우 부부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동대문에서 과일 주스 노점으로 장사를 시작해 2년 동안 자리를 잡았고 이후 햄버거, 떡볶이, 샐러드, 족발 등 여러 메뉴로 거듭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전했다. 점차 빚이 쌓여 가던 끝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골랐던 것이 바로 ‘고깃집’.
2012년 연탄불로 구운 고기를 배달하는 ‘구공탄’이 그 출발점이다. 깍둑썰기한 삼겹살을 구워 배달하는 것이 동대문시장 상인들에게 통했고 그때 번 돈으로 빚을 청산했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고깃집 사업을 하기 위해 먼저 한 일이 고기를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었다. 새벽 6시 영업을 마친 후 마장동을 찾아 상인들의 작업을 지켜봤다고 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마장동 상인들도 두세 달이 지나자 마음의 문을 열고 ‘이리 와서 보라’며 박 대표를 인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맛보지 않고도 좋은 고기를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이후 금돼지식당 오픈을 준비하면서 찾은 정답이 바로 ‘품종’이었다.
금돼지식당의 대표 부부는 흔한 돼지고기이지만 그 속에서 디테일의 차이가 있는 고기를 찾으려 애썼다. 너무 기름지지 않으면서 고소한 지방의 맛, 씹었을 때 치아에서 단단하게 씹히는 조직감 등 손님들이 한 점만 먹어도 ‘맛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 고기를 고민했다. 처음 오픈하는 시점에 찾은 고기가 바로 YBD품종. 요크셔·버크셔·듀록을 교배한 품종이다.
지금이야 돈가스집에서도 고기 품종을 함께 적어두는 일이 흔해졌지만 이 집이 문을 열던 2016년만 해도 품종을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고 데이비드 베컴, BTS, 지드래곤 등 수많은 셀럽이 앞다퉈 방문해 ‘차원이 다른 맛’을 연발했다. 가게 밖 줄은 줄어들 기미조차 없을 정도로 인기가 실로 대단했다.
현재는 예전에 사용하던 YBD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육향과 지방의 맛을 찾기 위해 돼지고기 품종과 선별 기준을 계속 조정하고 있다. 심지어 품종뿐만 아니라 숙성실의 온도와 습도까지 세밀하게 관리한다고 말할 정도니 깐깐한 디테일이 보통이 아니다.
금돼지식당의 시그니처는 바로 ‘본삼겹’이라 부르는 갈빗대가 붙은 삼겹살이다. 뼈와 붙어 있으면 숙성 과정에서 맛과 풍미가 훨씬 더 깊어진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실제로 2주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친다고. 가장 먼저 두툼한 두께가 눈에 들어온다. 일반 삼겹살보다 확실히 두껍다. 금돼지식당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바로 ‘원육의 선별’, ‘커팅의 방법’, ‘숙성’, ‘고기 굽는 기술’이다. 한눈에 보아도 맛있어 보이는 고기들은 잘 훈련된 서버가 완벽하게 구워 마지막 터치를 더한다.
고기 먹을 때 꼭 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바질 쌈’이다. 이름만 들으면 다소 생경한데 먹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주문하면 생바질을 한 대접 내어주는데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불판에 살짝 구워 향을 더 올린 뒤 고기와 함께 먹는다. 진하고 향긋한 바질의 향이 확 올라와 고급스러운 맛으로 변하는 것이 꽤 별미다.
고기를 다 먹고 난 뒤에는 김치찌개로 마무리하면 된다. 김치와 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가 진한 맛의 찌개라 입가심에 좋다. 라면 사리를 넣는다고 하면 육수를 추가해주기도 하는데 라면보다는 김치죽을 더 추천한다. 남은 김치와 고기들을 잘라 밥을 넣어 김치 리조또 느낌으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 와인 코키지가 가능하니 좋은 와인 한 병을 들고 가 맛있는 BBQ 시간을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안병익 식신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