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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K팝의 해외 진출사에서 박진영이라는 이름은 줄곧 전면에 서서 곡을 쓰고 모든 제작 공정을 진두지휘하는 총괄 프로듀서와 동의어였다. 2000년대 비의 월드투어, 원더걸스의 미국 프로모션, 2PM의 아크로바틱 콘셉트에 이르기까지 JYP의 모든 핵심 콘텐츠는 박진영의 음악적 감각과 디렉팅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JYP엔터테인먼트가 북미 음악 시장의 중심부에서 세운 전무후무한 상업적 기록은, 역설적이게도 박진영이 아티스트의 음악적 영역에서 손을 철저히 뗐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 주인공은 8인조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였다.
2017년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스트레이 키즈는 출발점부터 JYP의 기존 제작 공식을 완전히 벗어났다. 통상 K팝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제작은 기획사가 콘셉트를 설정하고 외부 유명 작곡진이나 대표 프로듀서가 곡을 배정한 뒤, 멤버들은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수직적 분업 구조를 취한다. 하지만 박진영은 스트레이 키즈에게 유례없는 자율성을 부여했다. 리더 방찬을 중심으로 창빈, 한으로 구성된 팀 내 프로듀싱 유닛 '쓰리라차(3RACHA)'에게 전권을 맡기고 데뷔 앨범부터 전 곡 작사·작곡·편곡을 아티스트가 직접 주도하도록 결정권을 넘긴 것이다.
창업 프로듀서가 신인 그룹의 음악적 방향성과 타이틀곡 선정 권한을 멤버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한 것은 업계 관행상 전례가 드문 선택이었다. 수십 년간 축적된 자신의 성공 경험과 통제권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박진영은 음악적 간섭을 배제하는 대신, 'JYP 2.0' 체제로 개편된 '1본부'의 전담 매니지먼트 역량과 글로벌 음반 유통망을 연결하는 플랫폼 인프라 지원에 집중했다. 프로듀서 박진영은 물러나고, 기업가 박진영이 환경을 깔아주는 체제로의 전환이었다.
데뷔 초기 국내 음원 시장에서 스트레이 키즈의 음악은 대중 친화적 사운드와 거리가 멀었다. 강한 베이스 라인과 빠른 전자음, 날것의 래핑을 전면에 배치한 사운드는 멜로디 중심의 국내 스트리밍 차트에서 낯선 장르로 분류되었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실험적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러나 북미를 중심으로 한 해외 음악 시장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아티스트 본인들이 직접 쓴 정체성의 혼란, 결핍, 사회적 규범에 대한 저항을 담은 직설적 가사는 서구 Z세대 리스너들에게 강력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외부에서 주입된 기획 상품이 아니라 아티스트 스스로 만든 음악이라는 점은 글로벌 팬덤(STAY)을 결집시키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유튜브와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확산된 파괴력 있는 무대 퍼포먼스는 북미 시장에서 팬덤의 유기적 확장을 가속화했다.
여기에 JYP의 글로벌 인프라가 맞물렸다. 2022년 초, JYP는 세계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와의 전략적 레이블 파트너십을 전면 확대했다. 단순 음원 배급을 넘어 북미 전역의 대형 오프라인 유통망인 타깃·월마트 등에 피지컬 앨범을 대규모로 독점 공급하고, 현지 라디오 및 미디어 프로모션을 가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쓰리라차의 음악적 원석에 메이저 유통망이라는 '날개'가 결합된 순간이었다.
그 결과는 숫자로 입증되었다. 2022년 3월 발표한 미니 6집 《ODDINARY》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로 데뷔했다. 한국 가수 역사상 방탄소년단(BTS)과 슈퍼엠에 이어 세 번째였다. 이후 《MAXIDENT》(2022), 《★★★★★ (5-STAR)》(2023), 《樂-STAR》(2023), 《ATE》(2024), 《合 (HOP)》(2024), 《KARMA》(2025), 《DO IT》(2025)까지 연속 발매작이 모두 진입과 동시에 1위를 차지했다.
이는 1956년 빌보드 200 차트 창설 이래 70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다. 첫 차트 진입 앨범부터 8개 작품이 연속으로 1위로 데뷔한 아티스트는 서구 팝스타들을 포함해도 전 세계에서 스트레이 키즈가 유일하다. 아울러 이들은 2000년 이후 데뷔한 전 세계 그룹 중 빌보드 200 최다 1위 보유 그룹이라는 타이틀도 함께 확보했다.
빌보드 200 차트는 단순한 대중적 유행을 넘어 실물 음반 구매와 디지털 다운로드, 스트리밍 총합을 반영하는 지표다. 즉 강력한 글로벌 충성 팬덤과 막대한 실질 구매력을 갖추지 못하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차트다. 스트레이 키즈의 연쇄 1위는 곧 전 세계 대형 스타디움 투어를 매진시키고 막대한 음반 및 MD 매출을 창출하는 독보적인 현금 창출력으로 이어졌다.
이 결과는 박진영에게 20년에 걸친 해외 도전의 최종적 해답을 제시했다. 2000년대 원더걸스 시절처럼 프로듀서 한 사람의 감각과 집념으로 현지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방식은 막대한 비용과 실패를 낳았다. 반면 아티스트에게 창작의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업은 '본부제'와 '글로벌 유통망'이라는 고도화된 시스템만 안정적으로 공급할 때, 세계 팝 시장에서 훨씬 더 거대하고 지속 가능한 성과가 도출된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입증된 것이다.
스트레이 키즈의 기록은 JYP가 '박진영 개인의 역량에 좌우되던 연예 기획사'에서 '자율적인 글로벌 슈퍼 지식재산권(IP)를 끊임없이 뒷받침하는 시스템 기업'으로 완벽히 전환되었음을 실증하는 데이터다. 15년 전 뉴욕의 덜컹거리는 투어버스에서 겪었던 뼈아픈 시행착오와 200억 원의 손실 속에서 구축한 JYP의 인프라는, 마침내 박진영 개인의 개입을 덜어낸 자리에서 세계 대중음악사의 전무후무한 숫자로 탈바꿈해 나타나고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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