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외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BND)의 전직 수장이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퇴임 후 옛 부하에게 돈을 주고 기밀이 포함된 내부 문서를 받아 민간 자문업에 활용하고, 외국 정보기관 관계자를 위해 분석자료까지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독일 연방검찰은 6일(현지시간) 아우구스트 하닝(80) 전 BND 국장과 그의 옛 비서실장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하닝에게는 국가기밀 탐지·수집, 국가기밀을 외국에 넘기려 한 반역 미수, 외국 정보기관을 위한 활동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수사당국은 바이에른주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베를린에 있는 관련 장소도 압수수색했다.
검찰에 따르면 하닝과 그의 옛 비서실장은 2010년 봄께 BND 정보를 대가를 받고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들은 2022년 6월까지 문서를 제공했고, 규모는 약 2,000건에 달한다. 상당수는 기밀로 분류된 자료로, BND 수뇌부 보고와 총리실에서 열리는 정보·안보당국 고위급 회의 준비 등에 쓰이는 내부 문서다.
하닝은 얻어낸 기밀정보를 활용해 외국 정보기관 관계자를 위한 분석자료를 작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독일 검찰은 해당 자료가 상대방에게 실제 전달됐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다른 외국 정보기관 소속 인사에게 수년간 정치 관련 정보를 제공했으며, 일부는 BND 내부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관련 국가를 공개하지 않았다.
독일 공영방송 WDR·NDR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의 공동취재에 따르면 유출 의심 문서에는 이란 핵 프로그램과 러시아군에 관한 민감한 보고서, 해외 협력 정보기관에서 받은 정보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매체는 하닝이 분석자료를 작성해주려 한 상대가 러시아 정보기관은 아니라고 전했다.
사건의 단서는 별도의 아동 납치 의혹 수사에서 발견됐다. 함부르크 수사당국은 지난해 9월 외식업체 상속인 크리스티나 블로크의 자녀 납치 사건과 관련해 하닝의 주거지 등을 수색하다가 BND 문서가 담긴 전자 저장매체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닝은 앞선 납치 시도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하닝은 1998~2005년 BND를 이끈 뒤 2009년까지 연방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이후 민간 안보 자문업에 종사했다. 함께 체포된 비서실장은 하닝을 보좌하다가 2012년부터 올해 3월까지 후임 BND 국장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독일 공영방송 ZDF에 따르면 마르틴 예거 현 BND 국장은 광범위한 내부 조사를 통해 하닝에 대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내부 보안에 타협은 없다고 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