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는 오직 영화"…'부산병' 예고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BIFF]

입력 2026-10-06 20:53
수정 2026-10-06 22:06
"최근 한국영화 상당수가 매우 인상적이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큰 주목을 받는다. 저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아시아 영화 무대는 아시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향력을 펼쳐야 한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2026) 심사위원장을 맡은 거장 장이머우 감독의 이 일성이 해운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선 아시아 최대의 영화 축제이자,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공인하는 'A-리스트' 반열에 오른 뒤 맞이하는 첫 번째 행사인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6일 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번 영화제는 세계 59개국에서 모인 247편의 공식 초청작과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등을 합산해 총 316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 세계 최초 공개인 월드 프리미어만 95편에 달한다. 특히 경쟁 부문 최고상인 '부산 어워드-대상' 수상작에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자격이 주어지면서 아시아 영화의 핵심 등용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배우 김민하가 단독 사회를 맡아 개막식의 오프닝을 책임졌으며, 개막 선언과 함께 열흘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개막식 레드카펫에는 김혜자와 현빈, 정우성, 손석구를 필두로 중화권의 판빙빙, 일본의 미치에다 슌스케 등 국내외 정상급 스타들이 포토라인에 서서 환호에 화답했다. 이어 배창호, 이장호, 정지영 등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인 원로 감독들과 김태호 PD도 발걸음을 함께했다.

영화 '호프'의 나홍진 감독이 황정민, 조인성, 음문석 등과 나란히 등장했고,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도 전도연, 설경구, 조여정 등 주역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오스카 감독상 트로피를 두 차례 거머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을 비롯해 프랑스의 샤를로트 갱스부르,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 거장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으며,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개막식에 자리해 축하를 더했다.


올해 개막식에서는 아시아 영화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거장들과 영화인들에 대한 수상이 이어졌다.

카멜리아상은 중국의 허안화 감독에게 돌아갔다. 허 감독은 "80세에 가까워지니 영화 만드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며 "이 상은 그 가치를 깊이 음미할 수 있는 지금 찾아왔다. 1996년에 처음 이곳에 온 이후로 다시 찾을 때마다 아름다운 행사에 참석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한국영화공로상은 부산국제영화제 첫회를 함께 만든 김동호 전 이사장에게 수여됐다. 모든 참가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며 그를 맞이했다.

김 전 이사장은 "지난 31년 동안 부국제를 적극적으로 성원해주신 부산시민과 정부, 국내외 영화인들께 감사드린다"며 "저는 올해도 10여 번 이상 해외를 다니며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데 힘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은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양자경에게 돌아갔다. 박광수 이사장은 그를 아시아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소개했다.

무대에 오른 양자경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아시아 영화에 바친 삶을 기념하는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며 "이 축제는 세계에서 아시아 영화가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이머우 감독과 허안화 감독을 깊이 존경하는 영화인으로 언급하며 "영화의 뒤에는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다. 저를 예술가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개막식에 참석한 전재수 부산시장은 330만 부산 시민을 대표해 환영사를 전했다.

전 시장은 "우리 부산국제영화제가 31살이 됐다. 영화제를 키워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고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SNS에 '부산병'에 걸렸다는 분들이 많다. 부산에 와본 뒤 다시 오고 싶어 하는 병"이라며 "부산 시장으로서 이 부산병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불치병인데, 치료제는 딱 하나, 부산을 다시 찾는 것"이라고 유쾌한 인사를 건네며 박수를 받았다.

박광수 이사장 역시 여러 가지 현안 속에서도 행사를 찾아준 임권택 감독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올해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은 심사위원들을 대표해 소감을 이어갔다.

장이머우 감독은 현재 준비 중인 SF 신작 '삼체'에 대해 "위대한 SF 작품이지만 촬영이 어려워 몇 년에 걸쳐 대본을 다듬어 왔다"며 "댓글 정보 40만 건가량 확인했을 정도로 대중의 기드가 크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관객 수준도 높아져 부담을 느끼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인 관점에서 좋은 영화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열정, 불꽃은 계속해서 타오를 것"이라며 "최근 한국영화 상당수가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큰 주목을 받고 있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평했다.

함께 심사봉을 잡게 된 비간 감독은 순수한 관객으로 참여해 아름다운 곳에서 영화를 즐기겠다고 말했고,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대담하고 도전적인 아시아 영화의 뉴웨이브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주리 감독은 나를 뒤흔드는 영화를 만날 것 같다는 설렘을 내비쳤다.

배우 최희서는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를 넘어 질문을 안겨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걸 깨달았다. 13편을 관람하며 최선을 다해 심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때 관객석에 있던 배우 전도연이 "희서 예쁘다"며 유쾌하게 응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사말 예슬라모바는 한국 방문의 기쁨을 전했고, 쩐 티 빅 응옥 프로듀서는 예매권이 빠르게 매진되는 것을 실감했다며 훌륭한 영화를 발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로는 올해 개막작인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가 소개됐다.

김종관 감독은 "현실을 기반으로 멋진 환영을 만들어 내는 동료 선배들 앞에 있으니 행복하다"며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네 가지 대화를 통해 관객들이 각자의 삶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회의 단독 진행을 맡은 배우 김민하는 "불이 켜지면 옆에 앉은 사람은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번 열흘도 누군가의 영화에 마음 한 조각을 건네달라"며 축제의 개막을 선언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5일까지 열흘간 부산 일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액터스 하우스', 오픈 토크, 마스터 클래스, 커뮤니티비프, 동네방네 비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부산=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